[경제시평]김광두/도덕적 해이는 마약이다

  • 입력 2001년 12월 10일 18시 22분


국민세금을 바탕으로 운용되는 공적자금의 부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공적자금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조성되고 사용되었으나, 그것이 지원받는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음을 보고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신상필벌 원칙 없어▼

우리는 1997년의 외환위기가 왜 초래되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도덕적 해이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채산성과 경쟁력을 경시하면서 부채 의존형 과잉투자를 지속했고, 금융기관들은 정상적인 대출심사과정을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정부는 폐쇄적 행정편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민을 속이려는 무사안일의 자세를 보여줬고, 정치인들은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는 게을리 하면서 권력의 꿀단지 나눠먹기에만 열중했다.

이번에 밝혀진 잘못 관리된 7조원의 내용을 보면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공적자금 조성의 원인을 제공했던 부실기업의 일부 기업주들이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켰고, 부실금융기관들의 일부 파산 관재인들은 해당 금융기관들의 골프회원권을 이용해 근무시간 중에도 골프를 했다. 공적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해온 정부의 핵심 책임자들 중 자성하는 자세를 보여준 사람은 별로 없고, 정치인들은 진실파악과 대책 마련보다는 내년 대선을 겨냥한 큰 목소리 내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어느것 하나 변한 게 없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회복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 흐름일 가능성이 크다. 세계 역사를 되돌아볼 때 도덕적 해이가 만연된 국가가 경제강국이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이 산업혁명에 성공했던 것은 시민정신 때문이었고, 미국이 세계최강국으로 영국의 뒤를 이어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19세기 미 국민의 청교도 정신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도덕적 해이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하나는 역사의식의 결여이고 다른 하나는 신상필벌 원칙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의 일본 경시청 고등계 형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경찰 간부로 변신해 독립운동가들을 괴롭혔던 경험, 군사독재시대의 권력 하수인들이 민주화된 정부에서도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모습들, 기업은 망했어도 그 기업의 주인들은 엄청난 부를 보유하고 호화사치 생활을 하고 있는 꼴 등등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도덕적 해이를 통해 얻는 게 잃는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지연 학연 등 각종 연고주의, 투명하지 못한 각종 제도, 이것에 바탕을 둔 부정부패 등은 우리 사회에서 신상필벌의 원칙을 약화시켰다.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할 능력이 없어도 끈만 잘 잡고 줄만 잘 서면 자리를 유지하고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누가 최선을 다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인가.

▼시장경제 효율성 파괴▼

21세기의 국제질서는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국가 간의 관계는 경제적 실리를 기준으로 각국 이익의 극대화 관점에서 경쟁과 협조 관계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세계질서의 형성 과정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국가 경쟁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 없이 무한경쟁과 경제적 실익중심으로 움직이는 국제사회에서 우리 국민의 위상과 생활수준이 향상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도덕적 해이의 만연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둡기 때문이다.

마약이 사람의 의식을 파괴하듯이 도덕적 해이는 시장경제시스템의 효율성을 파괴한다. 경제주체들이 도덕적 해이라는 마약 때문에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효율성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것이 무너질 때 우리 경제는 무한경쟁의 파도에 휩쓸려 세계경제의 밑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게 될 것이다.

도덕적 해이라는 마약의 뿌리를 뽑는 데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김 광 두(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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