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조명현/정치여, 경제를 도와라

  • 입력 2001년 12월 24일 17시 48분


새로운 한 세기의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던 2001년도 어느덧 저물어 간다. 올해는 세계경제의 동반침체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한 해였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구조조정 노력에 묵묵히 동참했다. 이러한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개선되고 있는 모습이다.

▼실물부문 경쟁력 제고 절실▼

4년 전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던 우리 경제는 현재 국제사회로부터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를 반영하듯 최근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BBB+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고 외국인 주식 투자자들도 ‘바이 코리아’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향후 다음과 같은 과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실물부문의 경쟁력이 제고되어야 한다. 비록 외형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기업부채비율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제조업체의 30%는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해외시장에서는 우리 제품이 선진국 제품과 중국 제품의 틈새에 끼어 수출은 10여 개월째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실물경제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통해서만 이 위기가 극복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금융 구조조정이 잘 마무리되어야 한다. 비록 금융기관 부실채권이 줄어들었고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도 10%대로 높아졌지만 금융위기는 완전히 극복된 것이 아니다. 우량은행간 합병 열기는 시장에 의한 금융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금융 구조조정의 완결을 위해서는 추가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서라도 부실 금융기관의 통폐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같은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금융 구조조정의 완결이 경제 도약의 필요조건이라면 정치적 리더십의 회복과 정치권의 각성이 이의 충분조건일 것이다. 우선,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국민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위기 속에서도 국민적 단합을 가능케 했던 정치적 리더십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23일 대외부채 지불 중단을 선언한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혼란과 리더십의 부재로 또 한 차례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경제적 안정과 번영에 정치적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는 정치적 리더십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의약분업 및 교육정책 등의 실정과 여러 가지 의혹사건은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켜 여당의 재·보선 참패와 여권 내부의 분열을 가져왔고, 그 결과는 정치적 리더십의 약화로 나타났다. 리더십 회복의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데 우리의 고민은 더욱 커진다.

진정한 경제 선진국이 되기 위한 또 하나의 충분조건은 정치권의 각성일 것이다.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는 각종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의혹들과 속속 드러나는 사실들은 우리 정치권이 아직도 정경유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전의 정경유착이 정권과 재벌의 유착이었다면 이번엔 일부 비도덕적 정치권과 사이비 벤처기업가들의 유착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기업가가 정치권에 돈을 갖다주고 또 정치인이 이를 덥석 받고 뒤를 봐주는 곳에서 어떻게 공정경쟁이 이루어지고, 시장원리가 작동되고,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겠는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가 정경유착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정치 리더십 회복 급선무▼

정치권은 자신들을 솔직하게 돌이켜 보아야 한다. 왜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왜 매일 언론에서 정치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떠드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성찰과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우리 정치가 새롭게 태어나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은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일 따름일 것이다. 내년은 정치가 경제를 뒷받침해주는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조명현(고려대 교수·경영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