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민국당 통한 정치복귀
불과 한달 사이에 생긴 일이다. 따져보면 김영삼전대통령(YS)이 2월초 부산을 방문했을 때부터 이런 분위기가 움텄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부산을 일부러 찾아 “김대중대통령(DJ)의 여당을 이번 선거에서 참패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사람들은 이를 DJ에 대한 독설 정도로 여겼지만 YS측근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나라당이 ‘멋들어지게’ 공천을 해 여당을 혼내주라는 독려를 한 것으로 해석했다. 영남 특히 부산 경남에 YS계를 전면배치해 필승 카드로 쓰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는 이를 무시했다. 차기 당권 대권 도전에 걸림돌이 될 만한 당내 비주류를 공천에서 철저히 물먹였다. YS계는 물론 민정 민주계 중진들을 배제했고 과거 YS의 국회의원 지역구에 DJ계보로 분류될 만한 사람도 공천했다. 이쯤 되자 낙천자들이 그대로 앉아서 죽을 리 없다. 하소연하는 정치인들의 행렬이 상도동에 줄을 이었다. 이는 민국당의 태동으로 이어져 영남지역 야당 표 분산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고 끝내 이총재도 YS에게 고개숙여 중재를 요청하는 꼴이 됐다. YS를 사실상 정치전면에 복귀시킨 것이다.
영남 표밭이 요동치자 다급해진 건 자민련이었다. 김종필명예총재(JP)는 발빠르게 공동여당 철수를 선언하고 엊그제의 총리답지 않게 DJ에 대한 무한 포격에 나섰다. 그럴 수밖에. DJ, YS가 다 뛰는데 3김 중 한 명인 JP가 빠질 수 있나. 호남은 난공불락, 영남의 몇 안되는 의석이 위협받고 충청도마저 흔들리는 모양새니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여기에 DJ가 한 수 앞서 “지역감정 이제 그만”을 외치자 JP는 즉각 “당신이 바로 지역감정의 원조”라고 맞받았다. 그 틈새에 한나라당도 멍석을 깔았다. 민국당은 아예 더 나아가 “영남정권의 창출” “TK, PK의 손잡기”를 외치고 있다. 본격적인 ‘땅 따먹기’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 정치판의 이런 모양새를 언젠가 한번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13년 전 87년 대선 때의 1노(노태우)3김전을 연상시킨다. 1노만 1이(이회창)로 바꾸고 3김의 현위치와 그에 따른 처신을 조금 융통성 있게 보면 그때의 4파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지역감정을 이용해 1인 보스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나, 패거리들을 전진배치하는 것이나 어쩌면 그리 똑같은가. 욕은 먹되 표를 얻을 수 있는 일에는 대리인을 앞세우는 것도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9단이라지만 그중 7, 8단은 지역감정으로 거저 딴 단수며 그걸 이용하는 데는 천부적 재주를 보이는 것도 여전하다. 이번 선거가 정말 총선이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총재 무늬만 다른 3김
시민단체들이 ‘바꿔’를 계속 외쳐대도 이들 보스들은 끄떡도 않는다. 3김식 정치 청산을 주장하던 이회창총재도 3김 뺨치는 정치행태로 ‘무늬만 다르게’ 3김 대열에 합류했다. 그나마 개혁파로 분류되던 정치인들은 신4당체제의 3김1이 바람에 어떻게 운신할지 모른 채 함몰하는 모습을 보인다. 부패정치 1인 보스정치를 몰아내자던 시민들의 다짐도 워낙 거센 지역주의 광풍에 빛을 잃어가는 형국이다.
3김식 정치를 끝내자는 마당에 그 정치의 가장 못된 패악이 부활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역사는 기차가 정거장을 지나가듯 궤도대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굽고 어두운 길을 돌아 제자리를 찾곤 했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정권의 중간선거에 총선답지 않은 대선식 지역바람이 부는 것은 꼭 쓸어내야 할 패거리 휩쓸림 정치의 폐해를 오히려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유권자들, 4월13일까지 정말 눈을 부릅떠야 한다.
mincho@donga.com
<민병욱기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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