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험한 헌정사의 고비마다 참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은 항상 희망이고 등불이었습니다. 유신의 인권박탈에도, 신군부의 숨막히는 강압에도, 민주화의 싹을 자르려는 어떤 회유에도 젊은이들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적당히 타협하려는 어른들에게 가치 있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 노력했고 그것이 오늘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0년 4월의 이번 선거에서도 젊은 열정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정치의 변화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한몫 했건만▼
이번 선거는 물론 과거와 같은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는 아닙니다. 한 몸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쟁취해야 할 지고의 가치가 있는 선거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어른이 된 과거의 젊은이들이 당시의 열정과 희생으로 일구어낸 민주화를, 또 당시의 어른들처럼 잘못 영위해 그렇고 그런 역사의 쳇바퀴를 돌린다고 냉소를 보낼 수도 있겠습니다. 20, 30대 젊은 층의 선거 참여, 즉 투표율이 역대 어느 선거보다 낮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짐작합니다.
말로는 깨끗한 선거를 외치는 어른들이 막상 판이 벌어지자 돈이며 욕설이며 온갖 연줄을 다 동원하고 동네끼리 지역끼리 패거리로 뭉쳐 난장판을 벌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정책대결도 없고 미래의 비전 제시는커녕 상대를 결딴내려는 승리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며 좌절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거를 외면하는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정치는 어른들, 당신네나 하라”며 투표를 하지 않고 놀러가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옳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정치가 마땅치 않고 혼탁하다고 느낀다면 그럴수록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의 의사표시를 명확히 해줘야 바람직하고 깨끗한 정치를 앞당기는 길이 됩니다.
불과 몇 년 후의 한국은 누구의 것입니까. 밀물처럼 다가온 정보사회 그 변화의 물결에 대응해 나라를 짊어지며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젊은 여러분이 바로 주인입니다. 이 나라와 그를 지탱하는 제도, 좋든 싫든 이어져온 관습과 모든 역사의 유산이 여러분에게 상속됩니다. 지금 잘못을 바꾸지 않으면 여러분의 선배들이 그러했듯 고통과 실의 속에서 그것과 싸우는 데 힘을 뺏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이 급변하는 세계는 저만치 여러분을 떨어뜨려 놓고 앞서 달려갈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 선거는 중요한 변화의 기류를 타고 있습니다. 정당과 특정 지도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선거 잔치’에 시민의 목소리가 한 힘으로 들어와 앉았습니다. 후보의 이름과 얼굴 정도나 알려주던 과거와 달리 납세 병역 전과 등 신상명세가 유권자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유리알처럼 투명하진 않아도 그들이 어떤 꼬리를 달고 있는지, 그 종류가 무엇인지는 보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선택이 쉬워진 것입니다.
▼투표참여해야 개혁과 변화 가능▼
남은 것은 참여입니다. 젊은 유권자 여러분의 열정 어린 동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조사들은 젊은 층의 냉담을 예고합니다. 20, 30대의 투표율이 나이만큼 20∼30%대에 머물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옵니다. 모두 손잡고 나와 구시대의 악습을 심판하는 마당에 앞장서야 할 젊은 여러분이 등을 돌린다면 미래는 어둡습니다. 20세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21세기가 여러분을 기다릴지 모릅니다.
내일의 한국을 만드는 주조장(鑄造場) 앞에 여러분은 서 있습니다. 개혁하고 변화시켜 밝은 미래를 맞을지, 지난날처럼 굴러가는 타성에 그대로 나라를 맡길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내 안의 ‘바꿔’가 아무리 강해도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어느 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남보다 앞서 투표장에 가는 참다운 젊은 용기가 지금 필요합니다.
<민병욱 논설위원> 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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