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은 계속될 것이다. ‘울어 피를 뱉던’ 한 맺힌 이산가족의 상봉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허리가 동강난 철도를 잇는 작업 등이 한반도를 흥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남북한 단일팀이 단일색으로 그려진 한반도 로고를 달고 평양과 서울에서 뛰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다. 납북자들이 어느 날 판문점을 넘어 손을 흔들며 가족의 품에 안기는 장면을 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연속적 감동에의 기대는 다른 형태의 불안과 맞닿아 있다. 이 소중한 불씨를 끝까지 살려낼 수 있을까, 북한은 정말 변화한 것인가, 무슨 일이 터져 ‘6·15 남북공동선언’이 휴지가 되는 건 아닐까, 남북 모두 평화통일의 자체적 역량 결집은 가능한가 등 반신반의의 자문(自問)이 그치지 않는다. 그 근저에는 체제의 상이성으로 55년간 쌓인 남북간의 불신과 파당적 쟁투로 점철한 우리의 정치현실에 대한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북한의 속내와 관련한 반신반의는 상황의 진전에 따라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나갈 것이다. 더욱 지금 남북간에는 작은 변화로도 어떤 희망의 조짐을 읽어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벌써부터 평양합의에 대한 시각차가 드러난다.
수백 수천 가지의 남북현안 중 특정사안을 거론했느니 않았느니, 또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논쟁이 분분하다. 1차 상봉할 이산가족의 숫자를 100명으로 잡은 게 너무 적다며 “적십자회담에서 숫자를 대폭 늘리라”는 요구에다 “이제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군지 대답하라”는 성급한 주문도 쏟아진다.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남북관계의 역사적 획을 긋는 것이므로 서두르지 말고 쉬운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자”던 회담 전의 다짐은 이미 색이 바랬다.
물론 합의에 대한 검증과 적부 논쟁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당연히 거쳐야 한다. 이를 토대로 ‘민족적 화합’과 ‘궁극적 통일’을 향해 냉전적 사고를 털고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기틀을 다져야 한다. 남북 합의를 가꿔 발전시키려면 남남(南南)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옳다. 다만 논쟁과 검증이 정쟁적 소모적으로 흘러 본말을 전도시킨 사례가 적지 않았던 우리의 경험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으로 남는다.
‘2002년 12월, 서울’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2년 후 2002년 12월은 남쪽의 대통령선거가 있는 달이다. 그때까지 남북관계가 어떤 형태로 진전되었든 대선의 최대이슈는 민족의 화합과 통일, 번영을 누가 가꾸고 발전시킬 적임자냐는 데 모아질 것이다. ‘6·15선언’이후 벌어진 논쟁을 누가 효율적으로 조정 통합하고 갈등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보여 성공했느냐는 데 모아질 것이다. 사고와 행동의 유연성을 과시하며 김정일위원장과 담판을 지을만한 배포와 철학은 물론 정파에 앞서 7000만 민족의 이익을 대변할 자질을 갖추었는지 심판할 것이란 얘기다.
김대중대통령 이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지난한 과제다. 100% 합일하는 의견은 있을 수 없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찾아지지 않는다. 큰 것과 작은 것, 당장 할 일과 천천히 해도 될 일 등 남북관련 사안의 대소선후를 가리기도 쉽지 않다. 정당한 지적도 꼬투리를 잡는 일로 비쳐질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대의(大義)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 민족의 문제를 높이 멀리 보라는 것이다. 2002년 12월이 아니라 2000년대 전반을 관통하는 한반도 한민족의 문제를 숙고하는 차세대 지도자를 기대해본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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