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재의 주장은 일리 있다. 여당의 항변처럼 수십 년 영남정권이 행사해온 인사의 불평등 관행, 즉 호남배제를 시정하려는 것이든 아니든 이 정권 들어 호남인의 요직 차지가 크게 늘어난 건 사실이다. 대통령이 “편중인사는 없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야당과 언론은 줄기차게 수치를 대며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고 국민도 이젠 대부분 “편중인사는 있다”고 느끼고 있다. 정권이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뼈아픈 숙제다.
그런데 문제는 ‘편중’ 지적을 하는 야당은 과연 ‘균형’인사를 해 왔는가이다. 이총재부터 지역차별 없이 여러 지역의 인재를 고루 쓰고 있는가이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총재와 한나라당 주변에서 호남은 턱없이 차별 받고 있다. 당의 요직에서 호남인을 찾기란 시쳇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정권 쪽에는 호남인을 무리하게 기용하지 말라고 호통치며 한나라당 내부에선 호남인을 쳐다보지도 않으니 이쪽저쪽에서 치이는 호남인의 입장만 딱하게 됐다.
실례를 들어보자. 이총재는 국회연설 직후 당 지도위원 7명과 당무위원 6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지도위원 중에 호남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당무위원 중 주요당직자와 시도지부장이 맡는 당연직 36명을 제외한 24명의 지명직 위원 중 호남을 지역구로 둔 사람 역시 한 명도 없다. ‘호남 출신’은 2명이 있지만 그들의 지역구는 모두 서울이다.
이총재는 지난달에는 사무부총장과 정책조정위원장 등 중하위 당직자 20여명을 임명했지만 여기에도 호남사람은 없다. 이렇게 인선을 하다보니 ‘주요당직자회의’에 참석하는 총재, 전당대회의장, 중앙위의장,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원내총무, 비서실장, 대변인, 기획 홍보위원장, 사무 1, 2부총장, 정조 1, 2, 3위원장, 수석부총무 등 16명 모두 비호남인으로 짜여졌다. ‘특정지역 배제 인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지적을 하면 한나라당은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한다. 요직을 맡길 만한 호남사람은 지난 총선에서 모두 낙선했으며 웬만한 호남사람은 한나라당에 오라면 고개를 내젓는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인가. 나는 그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각 당 비례대표 의원의 출신지 분포를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한나라당의 비례대표의원 21명 중 호남이 고향인 사람은 2명이다. 반면 민주당은 19명의 비례대표의원 중 8명이 영남출신이다. 선거전부터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민주당은 영남에서 한 석이라도 건지면 성공”이라는 말이 나온 만큼 자당 내에서 최소한의 지역균형을 이루려면 비례대표 당선권에 ‘취약지역’ 사람들을 우선 배치하는 의지를 보였어야 옳았다. 총선결과는 한나라당이 호남사람을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역정당은 3김 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다. 적어도 ‘3김 이후’의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특정지역에 대한 편애나 배척 등 극단적 감정을 버려야 한다. 자기 손으로 하는 인사부터 그런 것을 시정하기 위해 솔선수범 해야 한다. 주변이 지역적으로 불균형하게 포진돼 있으면 부족한 지역 인재를 어떻게든 충원해 쓰려고 노력하며 취약지역의 목소리에 오히려 더 귀기울여 정책에 반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전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고 그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역감정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남남 갈등’이 문제라는 얘기가 요즘 부쩍 늘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당부분 ‘동서 갈등’에 뿌리가 닿아있고 근저에는 정권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다시 정권을 놓고 지역문제가 불거진다면 김대통령이 ‘영남 딜레마’에 빠졌듯 이총재도 ‘호남 딜레마’에 빠지기 십상이다. 스스로 특정지역 딜레마를 풀려는 노력도 않는 사람이 국민대통합을 얘기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닐까.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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