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사람들은 서운할지 모르나 나는 후자에 더 점수를 준다. 집권당으로서 국민에게 미래의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당력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그들 스스로 차 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전당대회를 국민의 관심 밖으로 내몰았다. 우선 ‘차기대선이나 당권과 무관한’ 최고위원을 뽑는다고 공언해 대회의 의미를 여지없이 축소했다. 세상에 어느 정당이 전국대회까지 소집해 지도부 선거를 하면서 “여기에서 선출되는 이들은 나라나 당의 장래와 상관이 없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있는가.
이러니 국민은 집권당이 왜 많은 돈을 써가며 전국의 대의원들을 불러모아 대회를 갖는지 의아해 할 뿐 결과에 대해서는 심드렁한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최고위원 투표를 당총재인 김대중대통령이 하지 않는다는 점도 그렇다. “총재는 선출직과 별도로 5명의 최고위원을 지명할 수 있으므로 투표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은 “이번 선출 결과는 대권 당권과 무관하다”는 말과 맞물려 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대표최고위원을 선임하는 등 서열 매기기가 전적으로 총재에게 일임된 1인 보스체제임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김대통령이 투표를 하지 않는 진짜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경선에서 중립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말도 한다. 이것도 좀스러운 얘기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가 분명하다면 아무리 총재이자 대통령이라도 그 원칙을 깨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정도는 초등학생들도 다 안다. 누구나 똑같은 한 표를 남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행사하고 결과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총재가 누구를 찍으면 대의원들이 우르르 줄지어 따라와 찍을 것으로 보고 미리부터 중립 운운해 선을 그을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민주적 경선이라면 총재 아니라 누구라도 “나는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말을 해선 안되며 대의원에게 특정 후보 지지를 회유 강요할 수도 없다. 시쳇말로 ‘김심’을 말해서도 안되며 행사해서도 안된다는 것인데 그걸 지키기가 투표를 포기할 정도로 어렵다면 경선은 왜 하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백번을 양보해 엄정 중립을 지키기 위해 투표에 불참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해도 그것을 국민에게 내놓고 밝힐 사항인지 의문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자유 선거이며 될수록 모든 투표권자가 참여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라고 가르치며 투표권의 포기를 죄악시하기도 한다.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누구보다 참여민주주의에 앞장서고 자유 선거의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할 대통령이 비록 당의 선거지만 투표하지 않는다고? 중립을 지키는 것은 말과 행동으로 보이면 될 일이지만 민주주의 수범과 가치는 직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사항인데 그것을 포기한다고?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에게 투표 참여를 요구하고 젊은이들의 정치무관심을 나무랄 수 있는가.
축제 분위기로 치를 수 있는 집권당의 전당대회가 이처럼 헝클어지고 뒤죽박죽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2년반 동안 국정을 앞서 끌어가야 할 집권당이기 때문에 국민에겐 ‘남의 잔치’가 될 수 없는데도 민주당 사람들은 일부러 국민이 외면하는 대회를 치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런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집권 세력이 새로운 리더십의 대두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2년반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차기 대선후보군이 용트림하고 당권 경쟁도 벌인다면 급속히 레임덕에 빠질까 걱정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권 당권 무관론’을 강조하고 그래도 경쟁이 심화되자 중립을 얘기하고 급기야 당총재의 투표 불참론까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레임덕이 무섭다고 민주주의 원칙도 무시해야 하는가. 아니다. 김대통령은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투표를 하는 것이 옳다. 또 대의원들이 결정해준 대로 당 지도부를 구성해야 옳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