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민병욱]'일곱 번 만남'과 '그후'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34분


'일곱 번 만남'과 '그 후’

'일곱 번 만남’이라니, 혹시 무슨 영화제목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후’라니, 짧은 사랑과 애절한 이별 얘기를 하자는 거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다. 재미없는 국내정치에 관한 얘기일 뿐이다.

김대중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총재가 앞으로 영수회담을 갖게 될 횟수를 산술적으로 꼽아보면 일곱 번이다. 지난주 영수회담에서 두 사람이 "두 달에 한 번씩 정례적으로 만나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대통령 임기인 2003년 2월까지 열서너 번을 만나야 하는데 왜 하필 일곱 번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2002년 1월부터는 두 사람이 '정례적으로’ 만날 수 없으므로 그렇다.

내후년 1월 여당은 17대 대통령선거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열게 돼있다. 야당도 그 무렵 대선후보를 확정지을 것이다. 이회창총재가 후보가 되든 안되든 여야 대통령후보가 드러난 상황에서 선거관리를 해야 할 대통령과 야당총재만의 정례회담이 가능하겠는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내년말로 두 사람의 정례회담은 끝나고 2002년 초반부터는 여야가 명운을 건 대권전에 돌입할 것으로 봐야한다. 올해 한번 내년에 여섯 번, 합계 일곱 번 정례 영수회담을 한다고 본 것도 사실 최대한 많이 잡은 것이다.

현재로서는 김대통령이나 이총재가 '격월 1회’ 영수회담을 깰 이유는 없어 보인다. 노벨평화상을 탄 김대통령의 경우 가급적 야당의 주문을 폭넓게 들어주는 '민주적’ 모습을 보이려 애쓰지 않겠는가. 특히 경제 민생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이총재를 한편으로 끌어안으며 또 한편 책임도 공유시켜 국정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려 할 것이다.

이총재도 정치사상 유례없는 정례 영수회담에 거는 기대가 클 것이다. 국사 결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여당 사람들은 차마 못할 ‘쓴소리’도 자신있게 전달하는 등 위상을 높이려 할 것이다. 책임도 공유하지만 국가운영정보를 대통령과 정기 교류하는 황금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면 '대통령 준비’에 이처럼 좋은 떡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정치란 묘한 것, 생각처럼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두 사람의 정례회담이 모양좋게 순항해 국내정치의 고질인 불신을 벗고 여야대립이 아닌 대화정치, 상호존중의 정치, 상생의 정치로 나아간다고 보기에는 암초가 너무 많다.

우선 정례 영수회담이란 틀에 대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국정의 중요한 현안들이 국회를 축으로 하지 않고 매번 두 여야 총재의 만남에서 결정된다면 "그야말로 정치 실종”이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일부에서는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완벽한 '보스정치’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한다.

회담 횟수를 더할수록 "언제까지 허니문이냐”는 밀월론도 많아질 것이다. 벌써 어느 전직대통령은 영수회담 정례화에 합의한 야당을 겨냥해 "그러고도 야당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든 두 사람이 미묘한 문제에 대해 전격합의라도 한다면 '사쿠라론’이 나오지 말란 보장이 없다.

보다 큰 문제는 여야 내부에서 영수회담 정례화를 미덥잖게 보는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민주당 내부의 대권주자들은 "야당총재한테만 멍석을 깔아주고 우리는 뭐냐”는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내 대여투쟁론자들도 "이총재가 이러다 결국 김대통령의 페이스에 말려들 것”이라는 걱정어린 불만을 털어놓는다.

국정이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며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수회담 역시 한점 흠 잡힐 데 없이 차곡차곡 횟수를 쌓아갈 리 없다. 두 사람의 만남이 한번씩 흠 잡힐 때마다 보스정치론 사쿠라론에 멍석론 등 온갖 논이 힘을 얻고 영수회담은 상처투성이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곱 번 만남도 어려울지 모른다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그렇게 되면 '그 후’는 무엇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상극의 정치, 정권을 둘러싼 여야의 피튀는 싸움이 재연돼 경제와 민생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닐까. 남북문제 역시 날선 대립으로 방향을 못잡고 갈팡질팡하는 것 아닐까.

정치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정례 영수회담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사심없이 오직 국가발전을 위한 논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현명한 운영 방안을 두 영수가 일심으로 숙고하기 바란다. 그래야만 국민의 ‘그 후’가 편하다.

<민병욱논설위원> 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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