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민병욱칼럼]분노와 사랑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9시 13분


꺾이고 고통받는 속에서서도 다시 일어나 세상을 밝은 곳으로 꾸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아름답다.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사연을 접하면 마치 진한 감정의 물이 올을 타고 내려와 방울방울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분노로 가득찬 가슴에는 사랑을 위한 공간이 없다"는 표현과 마주쳤을 때도 그랬다.

너무도 사랑하던 열두살짜리 딸을 폭행살인범에게 빼앗긴 한 여인의 얘기다. 분노와 슬픔이 너무 컸기에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이 격리되는 것도 몰랐다. 함께 아픔을 나누던 남편마저 슬픔의 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분노의 독' 희망-평화 앗아가▼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결혼생활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그녀는 친구를 만나 울면서 하소연했다.

"이렇게 다 잃어가는 것일까? "

그러자 친구가 대답해주었다.

"이것봐, 분노로 가득찬 가슴에는 사랑을 위한 공간이 없는 법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인은 깨달았다. 범인은 딸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자신의 분노는 스스로의 인생을 앗아가고 있음을, 또 그 상태에서는 장래도 희망도 자유도 마음의 평화도 절대로 찾을 수 없음을.

그날부터 그녀는 분노, 슬픔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원상담을 하며 새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고통받으며 '죽어' 가던 딸의 모습만 생각하던 그녀에게 비로소 사랑스럽게 미소를 머금던 딸의 모습이 가슴 속에 살아 돌아왔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 세상의 소금이 된 보통사람 28명의 실화를 담은 책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분노'와 '인생'에 관해서는 미국의 칼럼니스트 미치 앨봄이 쓴 실화소설 '모리교수의 화요수업' (tuesdays with Morrie)도 빼놓을 수 없다. 보스턴 브랜다이스대학의 모리 슈워츠교수가 발끝부터 시작해 목 위까지 천천히 마비되는 루 게릭병 (ALS)으로 숨지기전 14주동안 화요일마다 병실에서 제자 미치와 나눈 인생수업 얘기다.

다른 곳은 모두 마비되고 목 위와 팔만 움직이는 교수에게 미치가 묻는다.

"분하지 않습니까? 서서히 죽으며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

가느다란 교수의 대답.

"매일 눈을 뜨면 몸 전체를 (느낌으로) 점검해본다네. 발가락부터 무릎을 거쳐 가슴으로 올라와 팔을 움직여보고 목소리도 내보지. 밤새 잃어버린 신체의 부분들에게 짧게 '애도'를 표하고 아직 나를 위해 활동해주는 부분들에게는 깊은 고마움을 표시하지. 살며 함께 했던 신체 일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보낼 수 있는 것도 드물게 행복한 일이라네."

"…"

"분노는 우리를 가장 못쓰게 하는 악덕이야. 천천히 죽어가는 병에 걸렸지만 이에 분노하고 슬퍼한다면 자네와 나의 마지막 수업이 있을 수 있겠나. 분노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지. 나는 지금 죽음과 마주하면서도 그 느낌을 정리해 인생의 약으로 삼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게 해준데 감사한다네."

일상에선 찾기 힘든 대화요, 생각들이다. 이쯤되면 '분노는 이따금 용기의 큰 무기가 된다'는 격언도 무색해진다. 화를 내며 분노하는 마음으로는 세상의 아무 것도 바로 볼 수 없으며 그것은 오직 어리석음과 함께 할 뿐이라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분노 타령인가. 몸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의 평정을 잃고 급기야 스스로를 죽이게 되는 어떤 분노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는 얘기인가. 그것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며 삶의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지역-정파간 극단적 혐오문제▼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이해하고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을 바닥에 깐 분노가 너무 많이 흘러다닌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현상이나 흐름에 대해, 지역이나 계층 정파에 대해 실체도 분명치 않은 막연한 분노들이 응어리져 작용함으로서 일상이 더욱 고단해지는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파에 대한 호오(好惡)가 단순한 좋고 나쁨의 차원을 떠나 극단적인 혐오 분노로 표출돼 정상적 범주를 일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문제다. 노벨상을 둘러싼 지극히 상반된 분위기와 급격히 표면화한 지역갈등의 문제들은 그 실례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나 냉소를 잠재울 묘책이 절실한 때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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