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민병욱]내 안의 희망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47분


러셀 콘웰은 미국 템플대학의 설립자다. 그는 군인이자 목사이고 변호사였으며 신문기자이기도 했다. 1925년 82세로 타계할 때까지 5000번 이상 대중강연을 했는데 강연 제목은 한결같이 ‘다이아몬드의 땅(Acres of Diamonds)’이었다. 젊은 시절 중동지역을 여행하다 들은 실화로부터 그는 강연을 풀어 나갔다.

‘옛 페르시아에 알리 하페드란 부자가 있었다. 강가 농장이 어마어마하게 커 그는 아쉬운 것 없이 만족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가 끼었다. 한 승려가 찾아와 진귀한 보물 얘기를 한 것이다. 승려는 “다이아몬드란 광석은 햇빛이 응고돼 빚어진,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보석”이라며 “그 광산을 발견하면 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알리 하페드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생 처음 자신이 가난뱅이란 느낌이 들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그는 승려를 깨워 물었다.

“어디를 가면 다이아몬드를 찾을 수 있습니까?”

“그걸 왜 찾으려 하시오?”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

“부탁입니다. 어디를 가야 합니까?”

“길을 떠나시오. 그러면 찾을 겁니다. 높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곳의 하얀 모래땅에서 다이아몬드가 난다고 합니다.”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여비를 마련해 알리는 길을 떠났다. 가족은 이웃에 맡겼다. 오직 다이아몬드를 찾겠다고 그는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 북부까지 이 잡듯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몇 년 후 돈이 다 떨어졌다. 신발도 해지고 마음도 해졌다. 비참한 거지꼴이 된 그는 스페인의 어느 해변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알리의 땅을 산 새 주인은 어느 날 농장 개울가 하얀 모래밭에서 반짝이는 검은 돌을 주웠다. 신기한 색깔에 반해 집으로 가져와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뿐이었다. 돌을 주운 것도 잊었을 즈음 승려가 찾아왔다.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승려는 외쳤다.

“다이아몬드! 알리 하페드가 돌아온 거요?”

“무슨 말씀, 알리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건 다이아몬드가 아닙니다. 우리 농장 개울가에서 주운 돌일 뿐입니다.”

두 사람은 개울가로 달려갔다. 모래땅을 맨손으로 팠는데도 반짝이는 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인더스강변의 골곤다 다이아몬드광산은 이렇게 해서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난 다이아몬드로 영국과 러시아의 왕관이 만들어졌다.’(러셀 콘웰·부자가 되는 것은 인간의 의무다)

한편 허황하면서도 한편 애절한 이야기다. 콘웰은 이 실화 외에도 ‘눈앞의 다이아몬드를 놓친 사람들’의 삽화를 더 찾아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이야말로 바로 ‘다이아몬드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믿으면 모든 사람이 현재의 환경에서 훨씬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능력, 지금의 힘으로 지금의 이웃, 친구와 함께 훨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마디로 행복은 무지개 너머가 아니라 우리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내 주변에 보물이 널려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공연히 처지를 한탄하고 스스로 비하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냐고 그는 반문했다.

한 세기 전에 살았던 미국의 콘웰과 그보다 몇백 년 앞서 산 알리 하페드의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지금 너무 내 것, 우리의 것을 낮춰보기만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정치는 개판, 경제는 쓰러질 판이며 사회는 먹자판이고 지역간엔 싸움판’이라는 풍자에 함몰되어 공동체 구성원끼리 아드등거리기만 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열 달 전 새천년 새아침을 맞으며 미래를 향해 뛰는 한 해를 보내겠다고 한 다짐을 벌써 던져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 안의 희망과 행복은 보지 못하고 서로를 비하하며 불신을 쌓아가고 급기야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라는 자포자기에 젖은 건 아닌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올해 우리는 사실 기억할 만한 많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것을 갈고 닦아 질 좋은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은 아직 미완이다. 내부의 미움과 분노, 불신이 큰 탓이다.

새천년 첫해 남은 한 달이나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다이아몬드의 땅이며, 또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보냈으면 싶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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