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민병욱]포용력의 위기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36분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사람들이 정치인이라지만 말만 들어보면 멋진 것이 꽤 많다. 중국 전국시대의 이사(李斯)가 그랬다. 달변의 지략가로 진왕을 도와 중국의 통일과 발전에 큰 공을 세웠으나 무자비한 탄압정치를 펴 사기에선 악인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그 이사가 군자의 포용정치를 구구절절 설파한 적이 있다. 본래 초나라 출신인 그를 축출하려고 정적들이 들고일어나 진왕의 마음이 추방 쪽으로 기울었을 때다. 그걸 되돌리려고 이사는 상소문을 썼다. 이게 보통 명문장이 아니다.

“태산은 한줌의 흙도 물리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높게 이룹니다. 하해는 가는 물줄기 하나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깊이를 더합니다. 왕자(王者)는 어떤 백성도 가리지 않고 써야 합니다. 그래야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계보…연줄…배척만 판쳐▼

인재와 의견을 두루 받아들여 넓게 써야 한다는 포용의 논지를 이처럼 멋들어지게 편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흙 한줌, 시냇물 한줄기가 쌓이고 모여 태산과 장강을 이루듯 세상의 인재를 차별 없이 쓰고 의견을 고르게 경청해야 정치를 완성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이사는 상소문 덕에 축출을 면하고 승승장구했다. 그의 무궁무진한 책략에 따라 진은 그 후 20년 동안에 천하를 병합했다. 왕은 황제가 되었다. 진시황제다. 이사를 포용하지 않고 추방했더라면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사가들은 말한다.

2천수백년 전의 중국 고사를 오늘 되씹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우리 정치가 간단한 포용의 논리조차 실현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 지역 사람을 두루 모아 쓰기보다 차별하고 분리시켜 작은 땅덩이를 갈가리 찢어 나누기 때문이다.

그건 여도, 야도 똑같다. 현직 대통령도 그렇고 전직 대통령도 그랬으며, 새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그렇다. 포용하기보다 오히려 배척함으로써 대권을 쥐겠다고 나서고 있다. 나라의 리더십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한마디로 포용력의 위기다.

현정권의 포용 부재는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인사 때마다 지역편중 시비에 휘말리고 계보정치, 연줄정치라는 지적도 심각하다. 강한 정부, 강한 여당을 외치면서 그것이 반대의견은 물리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다.

그 안에서 움직이는 이른바 대권주자들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국민 정서를 뒤흔들면서 특정지역별로 편가르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영남대세론’이니 ‘호남불가론’, ‘영남포위론’ 따위를 은근히 흘려 끼리끼리 의식을 조장한다. 여기에 포용이 있을 리 없다.

야당도 다르지 않다. 배타적 인재기용은 여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특정지역 특정학맥 인사들이 총재를 둘러막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총재의 뜻과 다른 비주류의 의견은 원천봉쇄해 이러다 당이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수권정당을 자처하지만 편협한 당 운영으로 미루어 과연 그들이 정권을 잡아도 괜찮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포용하기보다 살벌한 보복의 정치를 펼 것이라는 섬뜩한 예고가 나올 정도니 국민의 지지율이 높아질 리가 없다.

지금의 정치판을 ‘후3김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내년 대통령선거는 1987년 선거이후 15년 만에 3김이 모두 출마하지 않는 가운데 치러지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어느 선거보다 클 것이며 이미 그렇게 방향이 잡혔다는 것이다.

▼배타적 지역선거 또 봐야하나▼

대권주자들이 누구 한사람 걸출하지 않고 특히 사람과 의견을 포용하는 능력도 국민의 성에 차지 않는 점이 3김의 부활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3김정치’란 무엇이냐다. 나라를 찢어 한쪽의 맹주로 군림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온 것이 3김정치 아니었던가.

나라를 통합하기보다 분리해 힘을 극대화한 그들의 부활은 또 한차례 배타적 지역선거를 예고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지역과 다양한 의견을 아우르고 끌어안는 정치적 포용력을 보여주지 못한 여야의 대권주자들이 자초한 성격이 짙다.

이사는 멋들어지게 포용정치의 그림을 그려 천하통일에 일조했지만 말과 다른 탄압정치로 역사의 뒤편에 숨었다. 말만이라도 포용을 얘기하며 국민에게 파고드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 정치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 아득하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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