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유로 ‘반(反) 김대중’이나 ‘반 김영삼’, ‘반 이회창’ 등 특정 정치인에 대한 사람들의 강한 거부감에도 다소 무덤덤한 편이다. 오히려 그런 목소리들이 있기 때문에 그 유명한 정치인들이 스스로 말과 행동, 그리고 정책에 대한 반성을 하며 반대세력을 지지자로 바꾸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비판 비토세력의 존재야말로 정치를 발전시켜나가는 한 원동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이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빗대어 “의사 대신 정육점 아저씨가 심장수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에도 그랬다. 막말로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셌지만 웃기는 비유, 알아듣기 쉬운 예를 들어 정부 정책을 꼬집음으로써 더 신중하게 경제를 다루라는 주문을 한 것쯤으로 생각했다. 그가 정부정책을 “낡은 사회주의 방식”이라고 비판했을 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김의장은 그 정도 선에서 그치지를 않았다. 며칠 전 광주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그는 “DJ정권의 가신 중 몇 사람은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으니 ‘목포 앞바다’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듣기 거북한 말을 쏟아냈다. 특정인에 대한 비판의 수준을 넘어 특정지역을 일부러 들먹여 모욕하며 그 곳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말의 횡포를 부린 것이다.
김의장이 왜 하필이면 ‘목포 앞바다에 빠질 각오를 하라’고 했는지는 그리 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김대통령과 그의 정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극점에 이르러 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게 싫은 나머지 출신지역까지 내놓고 비아냥거리게 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 김대중’ 정서가 ‘반 호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자신도 모르게 ‘목포 앞바다’를 내뱉은 것 아니냐는 얘기다.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까.
이미 밝혔듯이 사람이나 정책에 대한 거부와 반대는 분명히 필요한 측면이 있다. 논리적이며 발전적인 거부나 반대는 말할 것 없고 다분히 감정적으로 보이는 거부조차도 어떤 개선책이나 대안의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선책이나 대안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사람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연으로 주어진 사항을 모욕적으로 깎아 내리며 비아냥대는 것은 쉽사리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피부색이나 성별이 나와 다르다고 반대하거나 조롱할 수 없듯 특정지역을 차별하며 폄하의 대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은 지역감정이 기승을 부려 자칫 나라가 동서로 찢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한 때다. 지역별로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고 통합하는 데 앞장서야 마땅한 원내 다수당의 정책위의장이 그러기는커녕 지역감정을 더욱 극대화시키며 편가르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김의장이 ‘목포 앞바다’의 독설을 퍼부은 그 날 그 자리에서 이회창총재는 “망국적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일을 필생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역설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총재는 특히 “우리나라가 사는 길,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길은 분열과 갈등을 하지 않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해 김의장과는 다른 의식의 일단을 드러냈다.
한 정당의 총재와 정책위의장이 똑같은 자리에서 전혀 의미가 다른 주장을 하는 이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로는 망국적 지역감정을 뿌리뽑자면서도 실제 당내에서는 그 해소책을 놓고 머리를 맞대지도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은 아닌가.
이총재가 진정 상생과 화합을 바란다면 ‘목포 앞바다’ 발언에 대한 질책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 목포시민에 대한 당 차원의 사과부터 한다면 그것이 지역갈등을 해소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민 병 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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