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변화를 수반하는 대선에서 승리해 역사의 열차에 남게 된 집권자측은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에 젖기 쉽다. 미국의 경제학자 허버트 스타인의 말대로 대통령(당선자)과 그 참모들은 자신들의 취임으로 세상이 달라지고 구정권의 어려운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수직 상승한 측근들은 세상이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목하고 언론들이 머리기사로 취급해 줄 때 자칫 오만의 길로 들어서기 십상이다.
▼´과시용´ 의심가는 재벌정책들▼
아니나 다를까, 대선 끝난 지 불과 한 주일도 지나지 않아 당선자 쪽 신(新)실세들은 앞으로 ‘세상 다스려 나갈 법’을 말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많은 것이 재벌정책이다. 예를 들면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 전체 이사의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하겠다는데 이 말은 정치에 비유하자면 대통령의 전횡을 막기 위해 국회를 강제로 여소야대로 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와 같다. 상장사 임원의 보수를 세상에 공개토록 한다는 주장은 임원들의 목에 소득액이 적힌 광고판을 걸어 종로거리에 세우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쯤 되면 새 정권이 기업 임원의 봉급을 정해주지 않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지경이다. 재벌정책이 대개 이런 식이다. 재벌이 잘못하면 정교하게 그 부분만 치료해야지 충치가 있다고 모든 이빨을 흔들어 놓는다면 밥은 누가 먹여 준단 말인가.
경제정책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득실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경제관료들이 오랜 시간 고민해 만든 정책을 실세들이 단번에 부정하고 하루아침에 다른 것을 내놓을 때 누가 그것을 신뢰할 수 있을까. 설익은 밥은 체하기 쉽다. ‘생각 없이 말하는 것은 겨누지 않고 총을 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요즘 선 밥에 체하고 총소리에 놀란 국민이 한둘이 아니다. 정책이란 것이 그냥 한번 던져 본 다음에 ‘아니면 말고’ 식으로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은 어설픈 정책의 실험대상이 아니다.
그 말들이 우발적 주장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애드벌룬을 띄워 민심의 풍향을 보기 위한 것인지는 모른다. 불과 며칠 만에 정책적 검토를 다 마쳤을 리 없다면 혹 상승된 신분에 도취해 개인이 즉흥적으로 내놓은 자기 과시용 말들은 없을까. 요즘 신실세들과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뒤 고급 한정식집들에서 북적댄다는 소문은 측근들 ‘말’의 또 다른 목적을 짐작케 해 준다.
물론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람 마음속에 억제할 수 없는 유혹이 살아 숨쉬는 것은 5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다. ‘말 안 듣는 은행장 목을 치겠다’는 70년대 독재정권식의 섬뜩한 협박에서부터 각종 이권 사업에 대한 선심성 약속에 이르기까지 당선자측의 ‘준비 안 된’ 말들은 그때도 난무했었다. 참다 못한 김대중 당시 당선자가 측근들을 불러 입 조심을 주문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함구령은 그때도 효력이 오래가질 못했다. 명함조차 새기지 못하게 했다니 당선자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건의대상은 국민 아닌 당선자▼
갑자기 신분이 상승한 측근들이 멋대로 위세를 과시토록 방관했던 대통령들은 바로 그들 때문에 예외 없이 욕(辱)된 말로를 맞았다. 대를 잇는 정권의 실패에 국민은 지금 분노조차 포기할 만큼 지쳐 있다. 그런 역사는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새 정권이 그 길을 걷지 않기를 진심으로 그리고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에서 제언하자면 제발 역대 정권과는 시작부터 다르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좋은 정책구상이 떠올랐을 때 실세들은 국민에게 대고 말하지 말라. 세 번 생각한 다음에 당선자에게 먼저 건의하라. 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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