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자의 검증은 마땅히 그가 지도자가 될 만한 그릇인지, 사상은 건전하고 국가이념에 위배되지 않는지, 내세우는 공약은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 밝히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검증이 상대에 대한 공격무기로 악용되는 상황에서는 정보력과 행정력을 독점하고 있는 집권세력의 손아귀에 대선 승패의 결정권을 쥐여주는 꼴이 될수 있다. 심지어 가짜 정보에 의해 선거가 결판날 경우 먼 훗날 진위가 밝혀진들 이미 엉뚱한 사람이 지도자 노릇을 한참 하고 있을 터이니 나라 꼴은 이미 망가진 뒤일 것이다.
네거티브로 상대 공격 악용
그럼에도 검증은 대선에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가톨릭에서 성인(聖人)을 선출할 때 그들은 후보자의 ‘뼛속에 남아 있는 결함’까지 찾기 위해 이른바 악마의 변론자(devil's advocate)를 지명해 완벽한 검증을 맡긴다. 성인이 되려면 그만큼 완벽해야 된다는 뜻인데 종교적 성인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적 직위, 즉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도 ‘피 속에 녹아 있는 결함’까지 검증받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은 국가지도자 후보에 대한 검증이 대단히 까다로운 나라다. 과거 어느 대선후보는 대학 시절의 논문에서 극히 일부분의 표절이 발견돼 곤욕을 치르고 물러날 정도로 이 나라는 정치인에게 도덕적 완벽을 요구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엄격한 시각으로 후보들을 검증하는 날이 와야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정치인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도덕 수준도 함께 높아져야 할 것이다. 미국에도 마피아 같은 범죄 집단은 존재하지만 일반시민의 도덕적 수준은 대단히 높다. 먹는 밥에 비유를 하자면 미국 밥에도 돌은 들어 있지만 밥알은 멀쩡하다. 그러나 돌투성이 쉰밥 가운데서 성한 밥알을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가령 국민이 사창가를 애용해 번창하게 해 놓고 도덕군자가 등장해 그것을 고쳐 주기 바라는 것처럼 국민은 편법과 탈법에 묻혀 살면서 결백한 정치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수동적 사고방식이다. 물론 정치인에게는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일반시민들이 도덕으로부터 얼마든지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회에서 성인군자형 정치인을 바라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자신은 고통을 겪지 않으면서 남들만 희생해 나라를 바로 세워 주기 바라는 것은 민주시민의 이상적 규범이 아니다.
이런 풍토에서 검증에 전혀 하자가 없는 인물을 구하려면 일부 종교지도자나 혹은 지리산 같은 곳에서 속세를 등지고 살아 온 촌로들 가운데서 고를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는 일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검증의 관문을 통과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잘못된 일, 싫어하는 일 안하고 살 수 있는 곳인가. 대권을 꿈꾸지 않던 어린 시절부터 미래에 대비해 삶을 원칙적으로 영위해 온 순백의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회구조가 편법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돼 있으면서 정치인에 대한 도덕적 기대가 이처럼 드높은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
‘5년 전 과오’ 되풀이 말아야
정치지도자에게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하고 자기억제를 통해 도덕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지도자를 찾기 위해 검증하는 것은 선거의 필수과정이다. 그러나 사회의식이 그런 것을 요구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도록 국민 스스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인은 바로 국민인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가짜 정보가 검증의 칼날로 둔갑하는 것을 이성적 논리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 될 때 우리는 5년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규민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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