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제가 그 무슨 핵문제로 소동을 피우며 제아무리 으르렁대도 자기의 운명을 지켜 자기식의 힘을 지닌 우리는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어제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얘기다.
▼온 민족 핵 볼모로 삼을건가▼
그러나 우리식대로의 ‘우리’란 평양정권의 소수 권력엘리트라면 모를까,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어두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다수 북한 인민으로서는 실로 가당치 않은 소리다. 세계식량계획(WFP)의 발표에 따르면 내년까지 북한 어린이 400만명이 굶주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진창이 된 장바닥에서 먹을 것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북의 부랑아들을 ‘꽃제비’라고 했던가. 이름이 너무 예뻐 오히려 참혹한 슬픔을 안겨주던 아이들이 지천에 깔린 마당에 우리식대로라니! 그러고도 ‘강성대국’을 외치다니!
평양정권은 미국 부시정권의 ‘악의 축’에 맞서 그들 체제의 ‘생존(生存)과 자주(自主)’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핵개발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제네바협정의 일방 파기도 미국이 먼저 핵위협을 하고, 주기로 했던 중유공급을 끊었기 때문이지 자기네 탓이 아니라고 한다. 거짓주장이다. 그들은 부시정권이 들어서기 전부터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세계 유일강국’ 미국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을 고려한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들의 행태는 오직 정권의 생존을 위한 것일 뿐이다. 평양정권은 ‘그들만의 체제’ 보전을 위해 북한 인민 전체를 핵의 볼모로 삼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은 남한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평양정권은 결국 온 민족을 핵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이건 생존도 자주도 아니다.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면서 어떻게 자주를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이 위험천만한 도박만은 어떻게든 중지시켜야 한다.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이 일을 누가 잘 해낼 수 있을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이 이틀 뒤로 다가왔다. 겉의 말보다는 속의 내용을 살필 일이다.
지난 주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진 ‘촛불시위’에서 수만명 시민이 외쳤다. “효순이를 살려내라. 미선이를 살려내라”고. 그들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열네 살 꽃봉오리 같은 두 소녀의 영혼을 위로하고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강력히 항의해야 하고 그것은 단순한 반미(反美)가 아닌 우리의 자존(自尊)을 되찾는 일이라고 했다. 몇몇 젊은이가 ‘미군철수’를 외쳤지만 촛불을 흔들며 부르는 ‘아리랑’ 합창에 묻혀버렸다.
수만 촛불은 워싱턴에 강력한 반미의 불빛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이 점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한국인은 미국의 은혜를 알고 있고 오랜 세월 고마워했고 지금도 잊지 않고 있지만, 아무리 큰 신세를 졌다고 한들 이제는 미국측이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려 하고, 죄를 지었으면 한국인 정서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제때에 합당한 사과를 받으려 한다는 것을.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진정한 파트너십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을.
▼이성적 판단이 참 자존▼
‘남한 국민의 자존’과 ‘평양정권의 자주’는 그 성격과 질이 전혀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미국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철저히 구분하고 떼어내야 한다. 평양정권의 자주는 그들만의 생존을 위한 거짓 자주이며, 남한 국민의 자존은 한 단계 성숙한 한미 동맹으로 가기 위한 참 자존이어야 한다. 현실을 무시하는 감성적 반미는 참 자존을 해칠 뿐이다.
대중적 정서를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이끌면서도 국민적 자존심을 고양시키는 전략적 사고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일을 누가 잘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도 이번 대통령선거의 핵심적 요소다. 이제 남은 이틀 동안 누가 다음 지도자로서 보다 나을지 곰곰 따져봐야 한다. 이성적 판단만이 참 자존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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