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이겨도 걱정 져도 걱정

  • 입력 2003년 4월 21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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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앞으로 다가온 4·24 국회의원 재·보선 투표율이 30% 안팎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다. 하기야 지난해 치러진 전국 13개 지역 재·보선의 평균 투표율도 29.6%였으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유권자를 100명이라고 가정하면 고작 30명이 투표하고 그중 10∼15표만 얻으면 국회의원이 되는 셈이다. 이럴 경우 선거를 통한 민의(民意)의 표출은 지극히 제한적이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다.

제대로 뽑지 않아 ‘3류 정치’를 낳고, 그런 정치에 실망해 다시 투표를 외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양질의 정치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진국도 투표율이 낮지 않으냐고 할 게 아니다. 그들과 우리의 형편은 크게 다르다. 그렇다고 유권자 탓부터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키워온 것은 정치권이다.

▼각기 다른 재보선 승패계산법 ▼

지금 여야(與野)도 투표율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로서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 같은 본질적 측면보다는 투표율이 높아야 유리하다고 보는 쪽은 걱정, 그 반대쪽은 안심하고 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재·보선에서 ‘이겨도 걱정, 져도 걱정’이란 말들이 민주당과 한나라당 내부에서 함께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두 당의 지도부로서야 일단 이기는 게 중요하겠지만 당내 신주류와 구주류, 지방 중진과 수도권 소장파 등의 승패 계산법은 각기 다르다.

민주당의 속사정부터 보자.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구주류측 기류는 설령 민주당이 세 곳(연합공천한 경기 고양 덕양갑의 개혁당 유시민 후보 포함)에서 전패를 하더라도 잃을 게 없지 않으냐는 계산인 듯싶다. 오히려 패배가 신주류의 일방독주를 막아낼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 이들의 처지가 더욱 갑갑해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선거패배로 신구 주류간 갈등이 심화되면 그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속사정도 미묘하다. 승리하면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씻고 거대 야당의 입지를 보다 확고히 할 수 있는 반면, 패배하면 당장 내년 총선을 걱정한 수도권 소장파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다. 몇몇은 당을 떠날지도 모른다. 한편 당내 일부 개혁파들은 승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번 재·보선에서 승리하면 당 개혁은 물 건너가기 십상이고, 그렇게 되면 정작 중요한 내년 총선에서 참패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듯 복잡한 속사정을 지닌 두 당이 한국 정당정치의 기둥이라는 점이다. 이래저래 걱정인 당내 세력들은 선거 결과를 놓고도 민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각각 자기들 입맛대로 해석하고 정파의 이해를 앞세우려 할 것이다. 비록 민심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수도권 선거라고는 해도 30% 안팎의 투표율로 나타난 세 곳의 선거결과를 두고 민심이 참여정부의 개혁을 지지한다든지, 또는 국민이 집권세력을 심판했다는 식의 과장된 의미 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

재·보선은 재·보선일 뿐이다. 차분하게 민의를 수렴하고 정치 개혁에 힘쓰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시 혼탁 과열이다. 겉으로는 이기고 보자고, 안으로는 이래저래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역당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당이 하라는 개혁은 하지 않고 여전히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정치 개혁이 우선이다 ▼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이 정당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정치 개혁”이라고 말했다. 당정분리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 개혁 없는 개혁은 결국 허구라는 점에서 국정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정치 개혁의 무거운 과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총선이 이제 1년 남았다. 노 대통령은 다른 개혁에 매달리기보다 정치 개혁에 힘써야 한다. 개혁의 우선순위가 틀리면 ‘참여정부’ 또한 대통령 자신이 말한 것처럼 ‘국민의 정부’가 겪었던 여러 가지 실패의 과정을 비슷하게 걸어갈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엄살’이었다고 해도 앞으로는 엄살이 될 수 없다. 국민은 대통령의 엄살을 더는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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