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의 대들보 못 보는 격 ▼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는다. 노 정부의 백일상은 푸짐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할 듯싶다. 적잖은 사람들이 지난 100일이 집권 초기였는지, 집권 말기였는지 헷갈린다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백설기를 나눠 먹을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노 정부의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한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참여정부는 밀월 기간 없이 언론의 비판에 맨몸으로 공격받으며 100일을 왔다”고 푸념하고, 대통령비서실장은 “(언론이) 초장부터 이렇게 짓밟으면 되느냐”고 목청을 높인다. 그들은 언론, 특히 일부 신문의 지나친 비판 탓에 잔치 분위기가 망가졌다고 보는 모양이다.
과연 그런가. 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제 눈의 대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의 티는 잘 보는’ 격이다. 그들은 ‘네 탓’을 하기 전에 ‘내 탓’부터 해야 했다.
문제는 ‘내 탓’에 대한 인식이다. 대통령비서실장은 청와대에 전문가가 없지 않느냐고 물으면 “신선하고 새로움을 준비하는 사람을 아마추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전부 아마추어다. 그러나 관료냐 아니냐의 구분으로 따진다면 우리는 모두 프로”라고 답한다. ‘왕수석’ 논란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에서는 시스템이 1인자로서 왕수석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대통령이 말이 너무 많지 않으냐고 하면 “대통령이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이제 이데올로기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대통령의 리더십을 생각 없이 손상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겠느냐”며 언론을 비난한다.
이런 일방적 현실인식에서는 ‘내 탓’이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아마추어 청와대’였으나 앞으로 빠른 시일 안에 프로가 되려고 노력하겠다고 했어야 했다. ‘왕수석’ 문제도 아직은 시스템이 잘 돌아가지 않아 불가피했지만 시정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대통령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대통령 지시가 안 먹혔다”는 식의 신중치 못한 발언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반어법과 역설법으로 솔직하고 친근하며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이려 했다지만 그동안 대통령의 화법은 너무 튀거나 일관성이 떨어져 오히려 국정의 불안정성을 부채질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말(言)이 곧 리더십을 구현하는 매개체라면 최고지도자의 부적절한 반어법이나 역설법, 그리고 비속어의 남발은 리더십을 손상시킬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이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대통령의 리더십을 ‘생각 없이 손상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에 진의를 판단해 전달하라고 하기 전에 그런 어법은 삼가는 게 좋다. 대통령의 말이 ‘이데올로기의 전도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의 말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통합을 일궈내는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시간과 인내 필요하다지만 ▼
노 정부 출범 100일 만에 국민 지지도가 뚝 떨어진 데는 이와 같은 ‘비주류 집권엘리트들’의 편협한 인식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국정은 ‘코드가 같은 동아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상대를 설득, 포용할 수 있는 ‘오픈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노 대통령은 어제 기자회견문에서 지난 100일 동안 우리 사회에서 빚어진 여러 현안은 ‘변화에 따른 진통이자 과도기적 현상’으로서 이를 바르게 정착시키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일 된 아기가 무사히 잘 자라기를 기원하며 백일상을 차리듯 국민은 노 정부가 남은 1700여일 동안 성공적으로 국정을 수행해주기 바랄 것이다. 그러자면 집권측부터 빨리 외곬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민의 인내는 짧아질 것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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