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탄핵 심판’을 내세웠던 열린우리당이 승리한 데 대해 AP AFP 등 주요 외신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로 해석했다. 이 또한 틀리지 않다. 그러나 승리의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총선 민의(民意)를 존중한다면 탄핵은 철회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절차도 정상적이어야 한다.
▼티코에서 리무진으로 바뀌면 ▼
탄핵 철회의 법적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당장 철회하려면 16대 국회가 탄핵철회안을 재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총선이 끝나 파장(罷場)인 마당에 그건 이미 물 건너간 얘기다. 그러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상적인 절차이며 법치(法治)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대통령을 위해서도 좋다.
야당의 무리한 대통령 탄핵이 결과적으로 여당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지만 대통령 탄핵 사유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분명히 선거법을 위반했다.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도와주는 것”은 뭐라고 변명한들 노골적 선거운동 아닌가. 다만 그 정도를 가지고 대통령을 탄핵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으냐, 하물며 ‘차떼기’ 야당이 그럴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지 대통령이 무고(誣告)를 당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의 말처럼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지하고 엄숙하게 사죄”부터 하는 것이 바른 순서다. 총선 민의가 ‘탄핵 반대’라고 하더라도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 도리다. 어쨌든 탄핵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대통령이니까 그렇다.
아무튼 정상화돼야 할 것은 비정상적인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만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 리더십의 정상화이다. 의회권력이 여대야소(與大野小)로 바뀌었는데도 대통령이 여전히 ‘분열의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탄핵보다 나쁜 재앙이 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노 대통령이 얼마 전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한 발언은 긍정적이다. “과거처럼 사생결단식 대결 정치보다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국민의 뜻과 정서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의 정치가 시도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발언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러나 몸집이 티코에서 리무진으로 커지면 힘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개혁의 이름으로 ‘완성된 권력’을 시험운행해 보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십상이다. 더구나 리무진에 올라탄 몇몇 인사들과 그 주변의 실세라는 인물들이 그동안 보인 언행에 미루어 보면 난폭운전의 가능성은 결코 낮다고 하기 어렵다. ‘잡탕 정당’의 헤게모니 다툼이 과속과 탈선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지위의 정상화 여부를 떠나 미리부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천착해야 한다. 그러자면 스스로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야 ‘국민의 뜻과 정서를 하나로 모으는 통합 노력’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총선 民意는 복합적이다 ▼
대통령의 지위 정상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리더십의 정상화가 더 급하다. 총선 민의는 단순한 ‘노무현 살리기’가 아니다. 지역구와 정당을 따로 선택한 상당수 유권자의 교차투표는 여야간 힘의 균형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당지지도가 38%, 35%로 나타난 것이 그를 입증한다.
더 이상 우리의 공동체가 분열되어서는 승자(勝者)는 없다. 모두 패자(敗者)가 될 뿐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말 대통령의 리더십이 달라져야 한다. 확실하게 달라질 수 있다면 탄핵사태는 오히려 좋은 계기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헌재 결정에 조급해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전진우 논설위원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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