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 여당 내에서 강한 반발이 일자 청와대는 통치권의 기본인 대통령의 인사권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군내 나는 ‘통치권’을 들먹일 요량이라면 ‘참여정부’라는 간판은 미리 내렸어야 한다. 민의(民意)는 말할 것도 없고 여당의 의견조차 무시하는데 도대체 누가, 어떻게 참여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인사권이 흔들리면 레임덕이 닥칠 수 있다는 것도 우스운 얘기다. 레임덕을 재촉하는 것은 인사권이 흔들려서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미 역대 정부에서 증명됐다. 가까운 예로 김대중 정부에서 ‘옷 로비 사건’이 정권의 힘을 약화시킨 것은 옷 로비 자체보다는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의 남편인 검찰총장을 문책하기는커녕 법무부 장관에 앉힌 때문이었다.
열린우리당이 오늘의 한심한 처지가 되고 만 데에도 대통령의 인사권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탄핵 역풍(逆風)으로 거대 여당이 된 2004년 4월 총선 직후 노 대통령은 정동영 당의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를 통일부와 복지부 장관으로 징발했다. 당내의 너무 이른 ‘차기 경쟁’을 막고 예비 주자의 경력 관리를 해 준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당은 당대로 무너지고 정 씨와 김 씨 또한 장관 경력의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 씨의 경우, 시종 ‘북한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김 씨도 연금제도 개혁 등 주요 과제를 풀지 못한 채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소신이 뚜렷하다’는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됐으니 장관 이력이 그리 대단하겠는가.
정 씨와 김 씨는 애초 당에 남았어야 했다. 서로 경쟁하면서 차기 주자로서의 위상을 국민에게 보여 줘야 했다. 그랬더라면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에서 둘의 지지율을 합쳐도 앞선 주자(고건 이명박 박근혜) 한 사람의 반 토막에도 미치지 못하는 참담함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노 대통령의 인사권이 과연 국정을 위해 올바로 행사되었느냐는 점이다. 장관은 국정의 중심이자 책임자이다. 나눠 먹기식으로 거쳐 가는 자리가 아니다. 분야별 현안을 풀고 매듭짓는 자리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인물을 앉힌 뒤 책임지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노 정권의 장관은 어떤가. 상당수가 취약지구 선거에 내보내기 위한 ‘용병(傭兵)’이 아닌가. 다음 달에 있을 2차 개각에서도 지방선거에 차출되는 인물들이 장관된 지 몇 개월 만에 줄줄이 옷을 벗을 것이다. 이들에게 장관은 표(票)를 위한 자리였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연(因緣)의 끈에서 비롯된 보은(報恩)의 자리요, 충성파에 주어지는 은전(恩典)의 자리다. 모처럼 원칙을 지키며 균형 있게 노사 문제를 다뤄 온 김대환 노동부 장관을 내보내고 불법 대선자금 모금으로 신세를 진 이상수 씨를 앉히는 것이나, ‘노무현 지킴이’라는 유시민 씨를 기어코 장관 만들어 주는 게 전형적인 예다.
이래서는 현안의 매듭을 짓기는 고사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기 십상이다. 예컨대 노동부 장관 내정자가 벌써부터 노사문제에 대해 딴소리를 해서야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온 원칙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는가. 결국 국가적 소모이고 거기에 드는 비용은 모두 국민의 혈세일 수밖에 없다.
‘유시민 장관’ 만들기는 부차적인 문제다. 장관을 장기판 말 움직이듯 하면서 오로지 권력의 이해(利害)만 계산해서야 국정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민심이 등 돌리고 희망마저 찾지 못하면 레임덕이다. 레임덕은 이미 시작됐다. 대통령이 자초(自招)한 일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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