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한나라당은 왜 존재하는가

  • 입력 2007년 5월 4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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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재·보궐선거 하루 전날 전재희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최근 공천과 관련해 (각종 부패 문제가) 한두 건도 아니고 여러 건이 지금 매일 터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 후에도 부패하려면 오히려 집권을 안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집권 후에도 부패하려면 마땅히 집권하지 말아야 한다. 공천 장사에 상대 후보 매수하고, 당 대표 지역구 구청장이 선거법 위반자들의 과태료를 대신 내주는 정당이 그냥저냥 집권하겠다고 한다면 뻔뻔스러운 노릇이 아니겠는가.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응답은 이랬다. ‘당연히 뻔뻔한 일이지.’

‘기초공천제’의 구린 냄새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격으로 제명(除名)을 합네, 자정(自淨)을 하네, 요란을 떨 게 아니라 부패 비리의 근원을 도려내야 한다. 지난해 5·31지방선거에서도 공천 비리로 입건된 118명 중 80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라고 한다. 여당이 워낙 죽을 쒀 한나라당에 공천 희망자가 몰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비리의 핑계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는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앞장서 폐지해야 옳다. 매관매직(賣官賣職)의 구린내가 진동하는 터에 정당정치의 활성화 운운하는 낯간지러운 소리는 그만둬야 한다. 더구나 지역민들은 ‘정치 일꾼’보다 ‘지역 일꾼’을 원한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여섯 지역의 시장 군수 구청장 중 다섯 곳에서 무소속이 당선된 것이 그 증거다. 여야(與野)가 짝짜꿍으로 합의했던 지방자치 ‘기초공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 일에 한나라당이 앞장서란 얘기다. 그런 것이야말로 이명박 씨의 말처럼 당이 부패와 비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자 개혁이다.

지방선거에서 손 떼는 일 정도는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근본적 물음에 비하면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은 이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묻고 있다. ‘당신들은 무엇을 보수(保守)할 것인가?’라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그거야 원론적인 얘기고, 지켜 내야 할 원칙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對北) 전략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김정일 평양 정권의 본질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핵 폐기 없는 평화공존은 거짓 평화다. 그것이야말로 보수해야 할 원칙이다. 공연히 북한 눈치 보며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비칠 이유가 없다. ‘냉전적 수구꼴통’이라는 이미지를 벗겠다고 원칙마저 흔들린다면 진정한 보수정당이 아니다.

7%의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을 만들겠다고? 좋은 얘기지만 어떻게 분열된 국민의 에너지를 결집해 성장의 동력을 이끌어 낼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한반도운하’와 ‘한중 열차페리’라고? 그거야 현실성과 효율성을 따져 볼 국가사업일지언정 ‘미래 대한민국의 비전’이라고 하기엔 초라하지 않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후속 대책도 등한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어떻게 양극화를 최소화하고 성장과 분배의 갈등을 조율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집권하고 나서야 로드맵을 짠다고 반년 넘게 시간을 허비하고 온갖 위원회를 양산(量産)한 아마추어 정부의 실패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 국민의 눈에 한나라당의 두 대권주자는 오로지 경선 승리에만 목을 맨 듯이 보인다. 경선 승리가 대권의 전제 조건인 만큼 치열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의원 줄 세우기도 세 다툼의 결과일 수 있다. 정책이나 도덕성 검증도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개혁과 화합의 조화’는커녕 상호 불신과 적대(敵對)로 치달아 그들의 경쟁이 과연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회의(懷疑)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권은 잡는 게 아니다

정권은 잡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것이다. 그 중심은 정당이 되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은 ‘비주류 한풀이 정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정권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잡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제 한나라당은 왜 존재하는가를 자문(自問)해야 한다. 좌파에 빼앗겼던 정권을 우파가 다시 잡자는 것인가. 그렇게 해서 단지 권력을 누리겠다는 것이라면 한나라당은 정말 집권해서는 안 된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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