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김근태가 한숨 쉰 까닭은

  • 입력 2007년 10월 19일 21시 23분


코멘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지명대회가 열린 15일 저녁, 행사가 끝나고 김근태는 도봉구 창동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필자가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하자 승용차 안이라고 했다. 수화기를 건너온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떻게, 전망이 좀 보입니까?”

“글쎄, 내가 지금 뭐라 하기에는 아무래도 좀 그렇고…. 아니, 뭐 어렵지요 어렵지. 국민 경선도 성공적이지 못했고…. 어려워요.”

수화기에서 그의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통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신선도 떨어진 단일화 카드

김근태가 누구인가. 그는 열린우리당 의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정동영과 함께 당의 대주주(大株主)이자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김근태에 대한 개인적 평가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이른바 민주평화개혁을 말한다면 정동영도, 이해찬도 그를 제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그가 6월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며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넉 달이 지나 그는 장충체육관의 단하(壇下)에서 단상의 정동영 후보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승용차 안에서 한숨을 지었다.

여권 대통합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정동영이 신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지만 독자 정당을 만든다는 문국현이 있고, 민주당에서 되살아난 이인제도 있다. 여권 후보가 반드시 단일화된다는 보장도 없다. 서로 팽팽할 때 단일화도 얘기가 되는 것이지, 어느 쪽이든 너무 기울면 단일화 얘기를 꺼내기조차 어렵다.

한 명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둘이 단일화를 한다고 해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처럼 흥행이 될는지도 의문이다. 신선도가 떨어졌고,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노무현과 정몽준은 지지 기반이 달랐다. 그래서 둘이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것이 비록 깜짝 쇼에 그쳤지만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반(反)한나라당 연합이란 식상한 메뉴 말고는 보여 줄 게 신통치 않다.

더구나 대선 뒤에는 바로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대다수 국회의원의 우선적 관심사는 총선에서 공천받고 의원 배지를 계속 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동영이 신당의 대선 후보가 된 데에도 현직 의원들의 그런 이해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선에서 이긴다면 좋겠지만, 질 경우 손학규나 이해찬보다는 정동영이 당을 추스르는 데 나을 것이란 계산이다. 한나라당에서 건너온 손학규는 당내 뿌리가 없고, 이해찬은 ‘친노(親盧)’여서 총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대선에서 이기든 지든 정동영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으냐, 최악의 경우라도 호남의 지지를 토대로 당이 공중분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김근태의 한숨’은 그런 정치적 이해를 계산해야 하는 딱한 처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를 한숨짓게 한 것은 대선의 승패보다 스스로 민주평화개혁세력임을 내세워 온 자신들의 참담한 자화상(自畵像)일 터이다. 국정 무능은 변명할 수 없고, 최후의 보루 같던 도덕성도 무너졌다. 민주개혁을 독점하며 상대를 부패 반칙 반(反)민주 집단으로 몰아세우던 그들이 정작 자신들의 후보 경선에서는 온갖 반칙과 부정의 종합세트를 선보였다. 그러니 국민 감동은 고사하고 그나마 관심을 가졌던 선거인단마저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했다. 지역경선 평균 투표율은 16.2%였고 서울의 경우는 고작 9.7%였다. 열에 한두 명이 투표한 꼴이니 과연 선출된 후보가 대표성을 가졌다고 할 수나 있겠는가.

야당 할 각오하라

그러니 당장 지지율이 올라가느냐 마느냐에 목을 맬 일이 아니다. 비록 재집권을 하지 못하더라도 민주평화개혁의 정통 세력으로 존속하고, 건강한 견제세력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 이제라도 지난날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국민의 신뢰를 구해야 한다. 너무 늦었더라도 전술 전략으로는 안 된다. 정도(正道)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당당히 야당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선에서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할 때 매우 좋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의 한숨 소리를 들어야 한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