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려진 ‘救世主론’
2000년도 더 지난 기원전 시대의 리더십을 21세기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리더십에 비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역사, 정치, 문화의 토양도 다를뿐더러 지금은 군주의 시대가 아니다. 수십 년 권좌를 지키는 데 요구되던 ‘육체적 내구력’은 이제 공직 수행에 필요한 건강이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지적 능력과 설득력, 자기 제어 능력, 지속하려는 의지야말로 여전히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資質)이 아닌가. ‘카이사르가 있었기에 로마가 있었던’ 시대야 아닐지라도 리더십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적 능력’은 학문을 통해 얻어진 지식이 아니라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는 당대의 인텔리였으나 ‘시오노 나나미의 성적표’에 매겨진 그의 지적 능력은 고작 30점이다. 지성(知性)이 곧 지적 능력은 아니라는 얘기다.
위의 기준에 따라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점수를 매긴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흥미롭기는 하겠지만 그 일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관심은 역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로 모아진다. 지도자로서 그의 자질은 과연 몇 점을 받을 수 있을까? 그가 말하는 실용주의는 이념보다는 현상 파악과 문제 해결을 중시한다. 노무현 정권은 이념을 문제 해결에 활용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을 이념의 틀에 맞추려다 실패했다. 세계화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민주화운동 시대의 가치에 매달리다가 양극화가 심화되고 청년 백수가 넘쳐 나게 됐다. 대통령의 ‘386 측근’(안희정)이 스스로 ‘폐족(廢族·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처지)’이라고 비하(卑下)하며 “변화와 개혁에 실패했다”고 자탄(自歎)할 지경이니 그들의 지적 능력은 아무래도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당선자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가 ‘경제 살리기’라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안다. 그 또한 ‘경제 대통령’의 슬로건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성장이 곧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구세주(救世主)론’으로 부풀려진 지나치고 조급한 기대는 급속한 실망의 거대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당선자는 과감하게 공약을 재정리하고, 형편이 빨리 나아지지 못하더라도 참고 기다려 달라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빠른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자기를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의지를 보여 줘야 한다. 그렇게 차근차근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공직은 노획물 아니다
그 첫걸음은 ‘코리아 드림팀’의 내각을 짜는 일이다. 그러자면 ‘대선 공신(功臣)’부터 멀리해야 한다. 대선 승리에 따른 일정한 논공행상(論功行賞)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직(公職)이 보은용(報恩用)이어서는 안 된다. 장관 자리는 대선 승리의 노획물이 아니다. 공신들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해 제 발로 비켜설 수 있어야 한다. 목수는 제가 지은 집에 살지 않지 않은가.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능력과 함께 진보-보수의 이분 구도를 넘어서는 창조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주는 내각을 선보여야 한다.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성패(成敗)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새해는 좋은 출발로 시작되어야 한다.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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