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손학규의 독배(毒杯)

  • 입력 2008년 1월 11일 20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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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4월, 노태우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만에 13대 총선이 치러졌다. 결과는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참패였다. 총 299석 중 125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되긴 했으나 DJ와 YS, JP의 세 야당이 164석을 차지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대여소(野大與小) 국회가 등장했다. 그 후 2000년 4월, 16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정권은 두 차례나 바뀌었지만 집권 여당은 한 번도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했다.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야대여소가 깨졌다. ‘대통령 탄핵 역풍(逆風)’에 힘입은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해 16년 만에 여대(與大) 국회가 탄생했다. 그러나 여당의 과반수는 1년여 만에 무너졌다. 총선 이후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판판이 패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왜 여기 와 있느냐’

첫 여소야대 국회가 출현했던 1988년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올해 4월, 18대 총선의 결과는 어떨까?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 만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시기적 조건은 같지만 관심의 초점은 다르다. 한나라당이 반수를 넘기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이 과연 몇 석이나 건질 수 있겠느냐가 초점이다.

‘경제 살리기’가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는 여론은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투표율보다 높다. 견제와 균형보다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택하겠다는 민심의 흐름이다. 여기에는 야대여소가 빚은 정치적 불안정의 오랜 경험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는 구여(舊與)에 대한 불신과 염증이 가시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지나친 쏠림은 안정적 국정에 반드시 득(得)이 되는 게 아니다. 과도한 힘의 집중은 과속을 낳고, 과속은 사고를 내거나 적어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에서 반수를 넘었던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가까운 예다. 그들은 힘을 실어 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국민은 ‘민생 의제’를 원하는데 그들은 ‘정치 의제’에 매달렸다. 대중의 경제적 불만을 외면하고 이념적 개혁 입법에 몰두했다. 개혁 대 반(反)개혁, 민주 대 반민주, 통일 대 반통일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르고 민의(民意)를 무시했다.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한두 번 선거로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것이 아니다. 제도나 의식, 문화 정치구조 등의 수준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은 그 오만함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다수 국민은 신당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독배(毒杯)’를 들었지만 독이 약이 돼 당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출신인 그는 당내에 뿌리가 없다. 전격 탈당한 이해찬 전 총리 등 반대파들은 그의 정체성을 물고 늘어진다. ‘당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느냐’는 식이다. 제3자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손학규를 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받아들였던 신당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면 애초 입당을 막았어야 한다. 흥행용으로 써 먹고 계속 출신성분을 따지는 것은 몰염치한 짓이다. 도대체 그들의 정체성은 뭔가. 무능한 좌파인가, 실패한 진보인가. 아니면 지난날 운동권의 저항적 관성에 매몰되어 있는 것인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손 대표가 당을 제대로 쇄신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인물들은 그 알량한 정체성을 들어 그를 공격할 것이다. 적당히 손 대표 체제에 편승해 지분을 챙기려던 계파들도 차츰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패배가 예정된 총선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다. 과연 독배다.

신당이 최악의 그림으로 간다면 한나라당이 4월 총선에서 반수를 훌쩍 넘는 의석을 얻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깨질 때 철저하게 깨져야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고도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다. 신당은 ‘분열적 독선적 진보’에서 ‘대중과 호흡을 함께하는 진보’, ‘실천 가능한 대안(代案)을 제시할 수 있는 진보’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준비해나가야 5년 후 또는 10년 후를 기약할 수 있다.

전진우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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