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를 찬양하는 보수우파들도 박정희 시대가 다시 올 수 없으며, 다시 와서도 안 된다는 데에는 동의할 것이다. ‘민주화의 퇴행(退行)’이란 소리야 제쳐놓더라도 시장경제를 하자면서 권력-관료-재벌의 수직적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박정희 모델, 즉 관치(官治)의 개발독재를 옹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박정희 모델을 답습하려 했고, 그것이 초반 실패의 주요인이었다는 경제전문가의 관점은 흥미롭다.
왜 경제에 집중하지 못하는가
전주성(경제학) 이화여대 교수는 “성장률 목표를 정하고, 필수품목의 물가를 관리하고,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수출을 독려하고, 대통령과 기업인 간에 직통전화를 개설하고, 대기업과 은행 간의 거리를 좁히려 하고, 운하를 파서라도 당장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 최선의 분배라고 믿는 등 이 정권의 경제 접근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박정희 시절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동아일보 8월 4일자).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올드보이 경제’의 상징적 인물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왜일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는 길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다. 지금의 곤궁한 처지도 경제가 풀리면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러자면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 기름값이 이렇게 뛸지를 누가 알았느냐, 세계 경제가 다 안 좋은데 용빼는 재주 있겠느냐는 하소연은 짧을수록 좋다. 주어진 조건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감세(減稅)를 싫어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그에 앞서 ‘세금 도둑’부터 없애야 한다. 예컨대 ‘신(神)도 놀랄 직장’이라는 공기업 개혁은 우물쭈물할 이유가 없다. 그러려면 권력을 사유화(私有化)하는 낙하산 인사부터 그만둬야 한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을 즐길 때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지방의회의 부정부패도 손봐야 한다. 차제에 부패의 싹이 되는 기초지자체에 대한 정당공천도 폐지해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나열한 몇 가지 외에도 경제를 살리고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개혁과제가 쌓여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갈등 비용이 적은 과제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 차근차근 실행해야 한다. 그렇게 국민 신뢰를 얻어 나가야 한다.
집권 측은 경제에 집중하려고 해도 ‘10년 좌파정권의 그늘’이 너무 깊고, ‘우리 사회에 좌파세력이 너무 많아’ 집중하기 어렵다고 할지 모르겠다. 따라서 좌파에서 우파로의 온전한 권력 이행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KBS 사장 해임을 둘러싼 작금의 갈등이야말로 그 대표적 사안이다. 정연주 씨의 경우, 2006년 11월 연임(連任)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을 피해 주차장 출구로 역주행해 출근했을 때 이미 공영방송 사장의 자격을 잃었다. 그런 행태로 방송의 공영성과 독립성을 내세운들 누가 공감하겠는가. 정 씨는 그때 물러났어야 한다. 그러나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데에는 이 정권의 잘못도 적지 않다고 본다. YTN에 이어 KBS 사장에도 MB캠프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몇 달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처럼 나돌았고, 대통령 참모는 KBS는 사실상 ‘관영방송’이라고 했다. 야당과 비판세력은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규탄했다. 엊그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그동안의 설(說)을 공식 부인했지만 좀 더 일찍 ‘정연주 문제’가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와 직결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란 상식적 가치의 문제다. 정치적 목표가 무엇이든 명분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 정권은 여전히 조급하고 서툴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좌파의 그늘’보다 심각한 것은
대통령부터 찬물로 머리를 감고 생각해보기 바란다. 경제를 살리려면 무엇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가? 국민의 신뢰다. 그런데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국민 신뢰를 잃었다. 대통령은 스스로 바뀌어 국민 신뢰를 되찾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정(失政)의 책임을 물어 경질했던 전 대통령경제수석과 기획재정부 차관을 각각 두 달과 한 달 만에 대사 자리에 앉히기로 했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문책했던 인사를 이렇듯 빠르게 뒤집어서야 대통령이 했다는 반성의 진정성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좌파의 그늘’보다 심각한 것은 신뢰의 상실이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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