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토끼와 산토끼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국정의 근본은 무엇이었나. 경제성장과 국민통합이고, 실용주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의 방식이다. 원자재 값 상승 등 대외 요인이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시대적 요구인 성장과 통합의 목표가 흔들려선 안 된다. 그를 위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좌절과 분열 대신 용기와 화합을 주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국민에게 주문하기 전에 대통령의 성찰(省察)이 이루어졌느냐는 점이다. 대통령은 “쇠고기 파동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고, 국정에 참고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스스로 바뀌겠다며 국민에게 두 번씩 사과도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통령의 진정성은 아직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는 미흡하다. 지지율 30%대 회복을 두고 여권 내부에서도 ‘집토끼의 귀환’쯤으로 평가절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투표자(63%)의 48.7% 지지를 얻어 압도적인 승리를 했다. 그러나 총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30% 수준이어서 압승의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지율 30%가 ‘집토끼의 귀환’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집 나갔던 토끼들이 돌아온 것일 뿐 국민적 지지를 회복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집토끼’들만으로는 성장과 통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 전통적 지지층 외에 새로운 지지 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이념적 성향구도는 대체적으로 보수(30%)-중도(40%)-진보(30%)로 일컬어진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고정불변(固定不變)이 아니다. 그러나 중도가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어느 한쪽이 헤게모니를 쥐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대선에서 과거 진보정권을 지지했던 중도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이 이명박 후보 쪽으로 돌아섰고, 그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던 것이 가까운 예다.
‘MB 지지율’의 핵심은 떠나간 중도 개혁성향의 ‘산토끼’들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이들 중도개혁 성향의 국민들까지 좌파로 몰아세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촛불 민심’을 두고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좌파세력이 있는지 절감했다”(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는 식의 편협한 인식을 드러내서는 그들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촛불집회가 불법 폭력 시위로 변질되자 그들은 광장을 떠났다. 그러나 MB 지지로 돌아서지도 않았다. 왜일까?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는 눈앞의 지지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게 아니라 바닥 민심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좌파는 우파의 상대적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좌파로 호명(呼名)되는 순간 반공냉전 이데올로기의 추억과 결합되면서 적대적 개념으로 변질된다. 우파 극단주의자들에게 좌파의 호명은 여전히 반대세력을 제압하는 유효한 무기로 작용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법치(法治)를 무력화하려는 일단의 친북좌파세력까지 포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비판세력을 몽땅 좌파로 적대해서는 국민통합은 요원할 뿐이다.
우파의 그늘
국민은 우파보수정권을 선택했다. 따라서 현 정권이 진보좌파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좌파의 그늘’에 대한 비판이 정당성을 갖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려면 ‘우파의 그늘’부터 지워야 한다. 우파의 고질병인 부패와 비리가 시도 때도 없이 도진대서야 좌파를 탓할 체면이 서겠는가. 좌파정권의 보은(報恩) 회전문 인사를 비난하던 우파정권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산토끼’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토끼’들끼리 하면 되지? 바닥을 쳤다는 ‘MB 지지율’이 행여 그런 신호라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전진우 언론인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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