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LA리포트]군비경쟁 부추기는 '숨은손'

  • 입력 2000년 9월 13일 18시 39분


유엔의 밀레니엄 정상회의가 끝나고 세계의 관심은 이제 시드니올림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유엔총회는 북한대표단 소동으로 석연치 않은 맛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주목할 것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에 대한 중국 등의 비판입니다.

▼軍産복합체 NMD 지지▼

국내에도 보도됐듯이, NMD는 미국을 공격하는 미사일을 요격미사일로 무력화시키는 방어체제로 북한 이라크 등 소위 ‘불량국가’들의 미사일 개발에 대응해 클린턴정부가 추진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NMD는 최근의 실험발사 실패가 보여주듯이 기술적으로 문제가 많고 천문학적인 비용에 비해 그 효과가 의심스러우며 기존 핵무기협정을 파기하고 새로운 핵무기경쟁을 야기할 것이라는 이유로 미국 내에서도 많은 핵물리학자, 핵전략가들의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한 예로, 만일 문제가 된다면 북한 등의 미사일이 아니라 오클라호마 폭발처럼 테러리스트가 간단히 핵무기를 미국에 반입하거나 미국에서 만들어 공격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NMD는 전혀 무력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문제들 때문에 최근 빌 클린턴 대통령은 NMD의 배치여부를 다음 대통령에게 미룬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부시 공화당 후보는 이의 전면적인 추진을 약속하고 있고 고어 민주당후보도 부시의 공격을 의식해 제한적이지만 지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NMD가 방어무기인 이상 문제가 없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를 지배해온 전통적인 핵전략은 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입니다. ‘상호확실한 파괴’라는 뜻의 MAD는 미소 핵강대국이 서로 상대방이 자신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고 확신할 정도로 핵무기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이 핵강대국들로 하여금 핵공격의 유혹을 피하게 함으로써 핵의 재앙을 피하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입니다.

말 그대로 ‘미친 짓’처럼 들리지만 이 같은 일종의 ‘공포의 균형’이 핵전쟁 저지에 기여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논리에 의해 핵무기협정은 방어무기의 개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NMD는 바로 이 같은 핵전략을 깸으로써 핵전쟁의 위험을 증대시킬 위험이 큽니다.

문제는 냉전시절에도 추진하지 않았던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고 불확실한 방어체제를 왜 이제 와서 추진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은 북한 등 불량국가의 존재를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숨은 이유는 흔히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고 부르는 군부와 방위산업의 막강한 입김일 것입니다. 과거 냉전을 이유로 엄청난 예산을 주무르며 이익을 챙기던 이들이 냉전이 붕괴된 이후 어려움에 처하자 새로운 무기체제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군산복합체는 냉전시절 군비경쟁에 전력하던 미국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주로 비판적 지식인들이 사용해온 개념입니다. 따라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 말, 그리고 이 말을 사용한 NMD 비판에 거부반응을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영웅이고 철저한 보수반공주의자였던 아이젠하워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이미 1950년대에 대통령 퇴임사에서 재임기간에 군부와 방위산업체의 영향에 의해 주요 정책들이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며 군산복합체를 통제하지 않는 한 미국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경고는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셈입니다.

▼수구세력 남북화해에 저항▼

한반도로 눈을 돌려 볼 때, 놀라운 남북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상호군비축소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나아가 군산복합체는 아니더라도 냉전체제에서 이익을 취해온 수구세력이 남북관계 변화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물론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나친 낙관론과 성급함 등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임대통령, 그것도 민주화운동 출신의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아이젠하워처럼 군산복합체의 위험을 경고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북간 철도복원이 공산군이 쳐들어 올 길을 닦아주는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구국운동을 펼치겠다고 나서는데는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손호철(서강대교수·현 UCLA교환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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