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 대해 온갖 이름을 붙여 역사적으로 단죄되어야 할 악의 화신처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집권 여당이 그토록 세차게 성토하는 반민주 기득권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자민련과 공동정부를 이끌어 온 근원적 모순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있을 법도 하지만 아무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비열한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다음 정권을 계속 장악해 보겠다는 의도 때문인데, 지금으로서는 이는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첫째로 통치에 필요한 사람의 장치(裝置)를 보자. 이 시점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대통령의 투쟁 체질은 그대로 그 장치에 전달되고 그 장치는 마치 혁명을 하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현대의 계급투쟁에서나 흔히 보던 상대에 대한 반감 증오 복수심 등으로 그 장치는 내적인 보수(報酬)를 얻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모험 획득, 지위 확보, 세력 부식 등으로 외적인 보수를 얻으면서 포퓰리즘적인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투쟁해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 정권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장치로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래도 경제사정이 좋을 때는 이런 정치를 사회가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는 것이지만, 이런 정치가 지금부터 정신차려 챙겨 나간다고 해도 이미 때는 늦었고 탄력성이 생겨난다는 것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한국경제보고서에 나오는 권고사항들은 국내 경제전문가들도 누누이 지적한 지당한 것들이지만, 이것이 실현되지 못한 것이 정치요인 때문임을 감안한다면 남은 기간에 방향선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때 그 위기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전반적인 인프라의 문제와 관련된 것임을 잘못 인식한 결과가 오늘의 경쟁력 상실을 가져온 것이다. 시장경제니 신자유주의니 생산적 복지주의니 혹은 사회주의니 하면서, 정의(正義)에 관련한 말도 많았고 행동도 많았지만 막상 정의 이전에 문제되는 현대적 경제의 기본조건에 관해서는 등한시해 온 것이 그간의 정책이었다. 그것을 구유(具有)하기 위해서는 5년이란 시간은 턱없이 모자라는 것임에도 단순한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것으로 자기도취에 빠지면서 방향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자기도취는 정치인에게 죄악의 시작일 뿐이다.
딛고 설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자기도취에 겨워 실정(失政)을 저지른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대북정책이다. 이것이 세번째 이유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체제간의 대립을 외면하고, 화해라는 이름으로 공존을 모색하여 통일을 멀리하고, 대화라는 이름으로 군사적 현실을 무시하는가 하면, 민주라고 하면서 북의 인권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들이 국민에게 얼마나 안전을 뒤흔드는 불안을 주어왔는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세간에 거론되는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터무니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북에 대해 자유와 민주를 주장하는 것이 보수라면 어떻게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진보라고 불릴 수 있는가. 한반도의 대립상황에서 한국이 평화를 모색한다면 그 수단으로는 월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대북정책에서 진보주의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정부의 대북정책은 보수나 진보와는 상관없이 낭만적 기회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권의 재창출을 모색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여간한 용기가 아니다. 국민은 반드시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사유만 하는 것은 아니라서 기대해 볼 만도 하겠지만 그 기대 속에 무너져 가는 나라의 힘은 아무래도 내년 말 대선 때까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 재 봉(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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