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봉칼럼]행정은 서비스다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59분


다음 정권을 누가 잡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이 정부가 꼭 계획이라도 만들어 놓아야 할 사안이 있다. 그것은 정부의 서비스 기능을 혁신적으로 보강하는 일이다.

개발연대에 정부는 생산기능을 주로 하여 단순사회에 앞장을 서야 했다. 그 결과 한국사회를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구조적인 면모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성공은 바로 그 변화의 주역인 정부의 기능이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 기능으로 변환돼야 하는 불가피한 요청을 만들어냈다. 불행하게도 이 요청은 충족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지연되어 왔다.

그런 가운데 현 정부는 구미 국가들이 갖추고 있는 현대적 면모들을 새로 도입하는 과감한 정책들을 채택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사회정책에 해당하는 보험정책으로 의료보험문제는 이미 잘 알려진 일이거니와 국민연금도 이대로 가다가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책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기업 할 것 없이 모두 밖으로 나갈 생각들뿐이며, 세법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준조세 또한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행들은 모조리 국영은행처럼 되어 기업의 생사가 정치에 좌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통 환경 위생 등 일반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짜증스럽기 한이 없다.

한마디로 산업사회에 적합한 서비스를 정부가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사회의 각 부문이 하는 활동이 정부가 모두 장악하고 통제하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고 기술적인 것이 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그 부문들이 스스로 해나가는 활동을 합리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서비스 기능의 강화에 주력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나, 이 요청을 계속 외면할 경우에는 조만간 한국은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질서를 완전히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경쟁력도 회복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것이다. 서비스 기능의 현재적인 상황을 그대로 두고 포퓰리즘적 정책을 계속한다면 과거의 아르헨티나와 같은 몰락이 반드시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 조직부터 서비스 기능의 강화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개조돼야 한다.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행정의 능률성을 철저히 검토하고 예산의 낭비를 막는 것이 급선무이다. 행정을 담당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금 정부 예산의 30% 정도는 절약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행정의 채산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산에 대해서 매우 의식이 희박한 것이 한국의 정치세계다. 이는 한국정치가 계산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 그런 정치로는 통치체제 여하를 막론하고 산업사회 자체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는 것이다.

가령 국회를 보자. 국회라는 것은 그 권한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돈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공공영역에 속하는 기관들의 돈의 운용을 통제할 수 있는 기능 강화와 법률의 제정 및 개정을 게을리 하고 있다. 시민들에게는 그 문제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없건만 실속 없는 싸움만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책상다리에 고약 붙이고 있는 꼴을 연상하게 된다.

특히 야당의 행태가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 실망스럽다. 정치는 물론 말의 싸움이다. 그러나 알맹이가 있는 말싸움이 아니면 정치는 권력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돈과 관련되는 문제가 지천으로 깔려 있고 정부 여당이 돈과 관련해 하루가 멀다 하고 실수를 해주는데도 문제를 집어내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수사(修辭)에만 매달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무릇 정치가 이해관계를 떠나서 있을 수 없는 것이거늘, 국민의 현실적 이해에 정치를 연결시키지 못하면 지지를 받기 힘들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야당은 황금어장에서 구멍난 그물만 지고 있을 것인가.

노재봉(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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