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와서 세도가들의 부패문제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이어 터지자 위기에 처한 권부가 개각이라는 처방으로 다시 한번 국민들의 망각능력을 이용하여 국면전환을 꾀하려 한 것도 하나의 예에 속한다.
▼개각은 게이트 국면전환용▼
그러나 이런 기술의 성패는 전적으로 문제를 정직하게 다루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번 경우 개각이 현안을 해결하는 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면 소기의 성과는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문제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데 있었음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 사태는 수그러들지 않고 더 악화된 결과로 나타났다. 정직하지 못하면 말과 실제가 다르기 마련인데, 흔히 이 정부의 속성으로 꼽히는 표리부동 현상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 데 그 원인이 있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법무장관 경질과 청와대 정책특보 임명으로 대표되는 방어와 돌파에 있었다. 권력핵심으로 치닫는 각종 부패사건들의 파장을 최대한 억제해 보겠다는 의도와 전반적인 지지도 추락을 남북문제의 돌파로 해결해보겠다는 의도가 그것이다. 이를 두고 개각의 변은 정치를 떠나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치와 국정이 개념들 자체로서 어떻게 구별되는가는 덮어두고라도, 인사권 예산집행권 정책결정권을 가진 자리에서 하는 행위가 어떻게 정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개각은 정치행위이다. 그런데 그런 정치적 의도의 개각으로 지금의 상황이 바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여간 착각이 아니다. 한 문제는 방어 벽을 넘어서고 있고, 또 하나의 문제는 술수로 넘기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민의 정부’라고 할 때 그 ‘국민’이 바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태껏 지나온 경과를 보면 ‘국민’이란 제왕적 권력이라고 회자되는 통념에서 보듯이 바로 ‘나’를 뜻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사실상 ‘국민의 정부’는 바로 ‘나의 정부’라고 해야 마땅한 현실임을 감안할 때, 바로 그 무소불위의 ‘나’가 지금은 안팎 꼽추의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외교문제만 하더라도, 대북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이 서로 국가가 달라 국익의 추구에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포용정책’에는 일치하고 있다는 설명인데, 과연 이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 따져볼 일이다. 미국의 정책은 포용이 아니고 관여 또는 개입정책이며, 정부가 말하는 포용정책은 유화정책이다. 이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다만 대화의 문을 둘 다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일치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정책의 본질에 있어서는 전혀 일치점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대 테러전쟁과 연관해 북한을 포함시켜 ‘악의 축’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세간에는 의론이 분분한데, 주목할 대목은 ‘축’이라는 말에 있다. 이것은 세계적 전쟁의 차원에서 쓸 수 있는 규정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문제를 세계적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세계적 차원에서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미 포용정책 이상없다?▼
그리고 그것이 군사적 면에 치중되어 있어서, 한국정부가 사회 경제 문화 차원에서 포용노력을 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를 넘어 세계적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북의 군사력 내지 체제 강화로 이어진다면 이는 미국으로서 묵과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말의 유희가 통할 수 있는 무대는 이제 사라졌다. 그렇다고 기선을 돌릴 것 같지도 않다. 체질상 그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은 그러나 금년 여름까지 남아있다. 정치적으로 이것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동안에 두 개의 국제적 운동경기를 통해서 경제에 희망을 불어넣고 새로운 북풍을 만들어 세력판도를 다시 짜서 정권 재창출을 기도하려 할 것이 예상되는데, 운이 따라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괴로운 드라마가 지금부터 시작될 것이 틀림없다.
전 국무총리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