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줘도 군사력 강화하는 北▼
평화는 군사적인 것을 제외하고 논의할 수 없다. 더더욱 군사적 긴장밀도가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논하면서 군사적인 면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환상밖에 없다. 요즈음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군사적인 면을 강하게 거론하고 있는 것은 있는 현실을 그대로 부각시킨 것일 뿐, 그것을 두고 미국이 전쟁분위기로 몰고 가고 있다고 보는 일부 시각은 환상에서 깨어나는 고통의 아우성일 따름이다.
본질적인 핵심문제를 덮어두고 북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국방백서까지 발간하지 않은 현 정부이고 보면, 한 여당의원이 부시 대통령을 ‘악의 화신’이라고까지 퍼붓는 사태가 일어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작태야말로 안보와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적 색맹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부시 행정부도 김대중 정부가 말하는 ‘포용’정책을 계속 지지해 왔거니와, 그 포용정책이 인도적인 대북 지원에만 해당한다면 미국도 이에 동조하여 작년만 하더라도 25만t의 식량지원에 금년에도 9000만달러의 중유지원을 계상해 놓고 있다. 대(對)테러 전쟁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은 냉전 후 미국 원조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이러한 긴장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군사적인 면에 북한이 어떤 변화로 보답하기는커녕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군사적 강화를 추구해 왔다는 데 있다. 한국이 제기했어야 할 문제를 미국이 들고 나온 것이 아쉬운 일이지만, 이제야 문제가 정확하고 균형 있게 현실적으로 규정받게 되었다.
이 문제는 대테러 전쟁으로 명확해지게 되었다. 냉전 뒤에 발생한 대테러 전쟁은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전쟁양태의 모습을 지니는 것으로서, 냉전시기의 대칭적 전쟁과는 달리 불확실한 상대에 의한 비대칭적 기습공격이 그 성격이다. 그러한 전쟁에 필요한 훈련 제공과 무기 공급에 바로 북한이 핵심적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의 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해 남의 집 불 보듯 하려는 태도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나, 이는 남한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그 오류를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한때 베트남전 이후 미군의 철수문제가 본격화되면서 한국도 핵무장을 고려한 때가 있었다. 물론 미국이 저지했다. 그것으로 위험한 핵확산이 막아지고 긴장이 확대되지 않았다. 그 뒤 비핵화선언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도 그 잘잘못은 차치하고라도 그런 노력의 바탕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모든 노력에 대해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이다.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라는 부시 대통령의 언급을 상기한다면, 지금부터 사태는 급박하게 전개될 것이 틀림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뒤따를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나, 전략적인 내용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지난달 미 국방대학 연설에서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냉전기 한반도가 대상으로 포함되었던 ‘윈-윈’전략에서 벗어나 네 개의 위기전역(危機戰域)을 동시에 제압하면서, 분명한 상대가 있는 ‘위협기반전략’에서 사태 중심의 ‘능력기반전략’으로 전환하되 국제적 행동공조에 있어서는 “임무가 동맹을 하되, 동맹이 임무를 결정케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표로는 체제 타격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美 체제타격전략'에 대책을▼
그는 이를 군사전략의 역사적 전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새로운 전략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를 면밀히, 그리고 시급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전략에 대해 더 이상 벼랑끝 협박으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현실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평화를 위해 모두가 이제는 약은 술수나 기형적 정책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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