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가 만연하면 정치운영이 비효율성을 유발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자아내며, 공적 자원이 낭비되고 기업의욕을 저하시킨다. 또 외국자본의 도입을 어렵게 함은 물론, 급기야 정치 불안을 가져온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관행´눈감다 사회전체 타락▼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인식은 정치 밖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판단들이고, 정작 정치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급격하게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겪어 가는 곳에서 부정부패란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또 전통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부정부패를 어떤 보편적 잣대로 가늠한다는 것은 합리적이 아니라는 생각들을 한다. 그리고 도덕적 법적 기준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고 항의하기도 한다. 선거를 없애면 모를까, 그것을 치러야 하는 이상 깨끗하게 선거에 임한다는 것은 필시 정치적 자살행위일 수밖에 없다는 항변도 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인식에는 일정한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이 가진 정치문화에서 보자면 정치자금에 관한 법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법도 없을 성싶다. 그런 법을 기준으로 본다면 정치인들이란 모두 예외 없이 탈법자들이고, 돈을 받지 않는다든가 돈을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치인일수록 기준과 반비례되는 위선자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예외가 축적되어 정상으로 자리잡는 경우다. 예를 들어 부패를 규탄하면서도 선거철이 되면 으레 손을 내미는 유권자들, 그리고 그 손을 받아들이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이미 비정상이 정상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극도로 심화되면 정치체제가 위협받게 된다. 다시 말해 정치에서 부정부패가 심화되면 그것은 곧 사회적 타락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상가들이 바로 이 문제를 두고 체제의 흥망을 논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그 중 유명한 사상가의 한 사람이 권모술수론을 전개한 이로 회자되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그는 타락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에 대한 처방으로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야 하고 그의 덕성으로 도덕적 소양을 백성들에게 주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물론 유토피아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최고통치자와 그 주변은 공적 이익의 희생으로 사적 이득을 챙기는 부정부패를 통해 유발되는 사회적 타락을 막아야 한다는 시사는 일리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후보 시절 어느 방송에서 깨끗한 돈은 받아보았지만 부정직한 돈은 받은 바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의 급에 있는 사람으로 그런 구분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정치의 맥락에서 이상한 일이지만 백보를 양보해 대통령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직에 있는 지금 ‘아태재단’이라든가 ‘사랑의 친구들’이라는 조직들을 왜 유지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일이 이러하니 친인척이 무슨무슨 게이트에 연관되는 사건도 일어나는 것이다. 과거 영국의 로버트 월폴 총리는 부패수단을 통해 내각제를 정착시키기도 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사회적 타락을 부추기는 결과만 가져온 것이 그간의 역사인 것이다.
▼언론-시민단체 견제 중요▼
과거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국민의 민주적 정치교양이 아직 낮은 단계에서 민주정치라는 틀에 맞추어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자면, 눈먼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은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와 범위는 이제부터라도 좁혀나가는 노력을 아껴서는 안 된다. ‘스스로 타락한 제왕적 권력자인 로마의 카이사르 같은 사람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우리에게도 고통스러운 선택을 요구하는 판단이다. 이 점에서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견제 역할이 지극히 중요하다. 이들을 통해 시민사회의 체질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권력 부패가 사회기능 전체를 굴절시키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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