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연극, 영화, 가요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필자에게 “연극은 돈 내고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무슨 뜻일까 한참 생각했다. 연극이 돈 내고 보기엔 아까운 장르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공짜표 때문일까.
막대한 제작비와 오랜 연습 끝에 무대에 올리는 작품성있는 공연은 표를 구하기 매우 힘든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공연 관계자들은 으레 ‘사회지도층 인사’들로부터 표를 구해달라는 압력을 상당히 받는다. 표를 사지 않고 초대권 받는 것을 특권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연말연시 선물로 공연티켓이 인기가 있는데, 이때 무료초대권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인사들은 돈이 없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아니다.
대학로 연극계에 이렇듯 공짜초대권이 남발하게 된 데는 물론 연극인들의 잘못이 크다. 1990년대 중반 많은 관객들로 붐비던 대학로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위기를 만나 관객 수가 수직으로 떨어져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펼쳐왔다. 또한 PC통신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공연기획사 측의 일방적 홍보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공연을 보고 인터넷에 띄운 관람후기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래서 초대권을 남발해서라도 1주일만 관객을 채우면 입소문으로 관객이 많아진다는 이른바 ‘구전 마케팅’이 유행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초대권 남발로 결국 연극은 ‘값싼 예술, 제값 주고 보기에는 아까운 예술’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러한 때 서울 강남의 LG아트센터는 개관 초기부터 초대권을 없앤 극장으로 화제가 됐다. 물론 초기에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매정하게 그럴 수 있느냐”는 시달림도 받았지만, 현재는 직원들조차 돈을 내고 공연을 관람하는 풍토가 정착됐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생색내기용 ‘금일봉’을 전달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정작 공연은 표를 사서 관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술인들은 직접 표를 사서 객석을 채워주는 사람들을 어느 누구보다 고맙게 생각한다.
대학로를 자주 찾는 현역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은 매번 연락도 없이 조용히 와서 매표소에서 줄을 서서 표를 끊고 관람을 한다. 어느 날엔 공연날짜를 잘못 알고 공연 시작 전날 극장을 찾았다가 헛걸음을 한 뒤, 다음날 또 다시 와서 매표소에 줄을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모습인데, 그는 정말 매너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권위와 직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 자체가 좋은 인상을 준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페어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적어서일까.
손상원 공연기획사 모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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