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를 합시다]차인표/병역의무 이행은 기본…

  • 입력 2002년 3월 18일 18시 18분


얼마 전 가수 유승준이 병역 파문으로 홍역을 치르는 것을 보고 1995년 내가 군 입대를 결정했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사실 그때 나도 고민이 많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연기자가 되겠다고 한국에 들어온 후 천신만고 끝에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잠시 미국에 들어갔다 다시 나올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일.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원칙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변에서 내 결정을 말린 사람도 없지 않았다. 인기의 유효기한이 길어야 6개월인 연예계에서 이런 기회를 스스로 ‘유예’하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설득의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그냥 군에 입대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결정은 이후 몇 년 동안 내게 ‘평정심’과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꼭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가 할 건 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거였다.

이런 생각은 얼마 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때 쇼트트랙 김동성 선수의 파문을 보고 다시 들었다. 김 선수가 경기를 이기고도 실격 당한 일이다. 나중에 TV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니, 안톤 오노는 당연히 먹을 떡을 먹었다는 듯, 뻔뻔할 정도로 당당했다. 반면 김 선수는 말이 없었다.

약속이나 한 듯, 미 언론사들은 오노의 정당성을 부각시켰고 미 NBC 방송의 ‘투나잇쇼’ 진행자 제이 레노는 한국을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은 미국인들이 잘 쓰는 표현을 빌리면 “It’s not fair!(그건 공정하지 않아!)”였던 것이다. 국내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그들은 인터넷에서 오노의 홈페이지 등을 해킹해 며칠동안 서버를 다운시켰다. 나도 개인적으로 오노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어서 여러 차례에 걸쳐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했지만, 서버가 다운되어 글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흥분과 분노 속에 동계올림픽 관련 보도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이는 주로 안톤 오노, 리자준 등 경기 중 파울플레이를 한 인물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이번 월드컵 때 미국에 불이익을 주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파울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쇼트트랙 경기에서 단 한번의 파울도 저지르지 않고, 깨끗한 페어플레이를 한 우리 남녀 국가대표 선수단에 대한 칭찬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금메달을 딴 것보다도 더 자랑스러운 것은 우리 어린 선수들이 이미 더러워진 현장에서 끝까지 페어플레이를 해주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결국은 나도 포함됐지만) 이 선수들에 대한 칭찬보다는, 파울플레이를 한 사람들에 대한 원망만을 주로 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오노의 홈페이지를 찾아 다녔던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지금이라도 페어플레이를 한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었으면 한다. 결국 해야 할 걸 해낸 그들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차인표 탤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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