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병의원 수는 의약분업 전인 2000년 상반기 531곳이던 것이 현재 728곳으로 늘어났다. 압구정동 일대를 걷다보면 건물마다 빼곡히 들어찬 병원 간판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2년이란 짧은 기간에 37%나 증가한 것. 지난해만 해도 대학병원 의사 10명 중 1.7명, 중소병원은 3명 중 1명이 병원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늘어난 개인병원은 역시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인기 진료과다.
인기과 집중 현상은 올 초 있었던 레지던트 선발전형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비보험으로 수입을 올리기 쉬운 인기과 경쟁률은 피부과 2.2, 성형외과 2, 안과 1.8, 이비인후과 1.6, 정형외과 1.5 대 1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외과계통이나 정확한 진단에 필수적인 방사선과, 해부병리과는 정원도 채우지 못했다. 머지않아 의료보험제도의 맹점이 낳은 의사 인력의 편중 현상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기 진료과 개원의가 늘게 되자 협진체계가 아닌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나라 병원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치료와는 무관한 고가의 인테리어와 최신식 장비를 들여놓는 데 혈안이 되고 있다. 안과만 예를 들어보아도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라식수술에 사용되는 기기인 엑시머레이저가 현재 국내에 400여대나 도입돼 있다. 이 같은 첨단장비 경쟁은 급기야 가격경쟁, 나아가 덤핑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 자신의 수술 기술과 경험을 내세우기보다는 첨단장비와 인테리어를 앞세우는 병원과, 그것을 평가의 척도로 삼는 일반 환자들의 왜곡된 진료개념도 염려스럽다.
만약 우리나라 개원의들이 자율경쟁에 실패해 무너지기 시작한다면 환자들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병원도 투자가 거의 없는 영세 의원으로 전락해 시대 조류에 뒤떨어진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시장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적절한 시장경제 테두리 내에서 출혈경쟁 없이 환자들에게는 최상의 진료, 의사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의료체계의 정착이 시급하다. 비보험 수입이 적은 진료과를 경시하는 풍조는 일부 진료과 의사의 구인난을 초래하고 이는 곧바로 환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비인기과의 의사들에게도 적정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혁신적인 제도를 만들어 의료인력의 편중과 의료계의 과당경쟁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동호 안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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