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정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건너 터져 나오는 회계 분식, 부정 대출, 주가 조작 등 회계를 둘러싼 시비는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자본주의의 위기, 신뢰의 붕괴 등 표현은 언론의 허풍도 일부 섞인 것이기는 하나 지금의 사태가 새로운 위기적 상황임을 지적한 것이다.
왜 회계가 문제인가. 회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회계가 하찮은 것이라면 대(對)테러전쟁을 외치면서 세계를 호령하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고 딕 체니 부통령이 진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우리 경제의 영웅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수의 차림으로 대중 앞에 나설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분식 조금하고 거짓말 좀 하였기로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야단들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회계가 무엇이기에. 당연한 질문이다. 간단히 말하자. 회계는 은행, 주주 등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회사에 돈을 꿔 주었다가 떼이는 건 아닌지, 이 회사의 주식을 샀다가 본전까지 날리지는 않을지 등 뭔가 알아보려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자면 정보가 있어야 하고 이에 회계가 필요한 것이다.
회계자료를 보고 돈도 꿔 주고 주식도 산다. 이렇게 되면 안정된 기업, 성장하는 회사에 돈이 몰리게 되고 결국 사회적 자원이 경쟁력 있는 기업과 산업으로 배분된다.
그런데 회계정보가 거짓말투성이라면 자원 배분에 심각한 왜곡현상이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 경제가 사상누각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최고경영자(CEO)의 회계 의식에 획기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최근 언론에서 운위되는 ‘가장 더러운 단어는 CEO’라는 불명예를 벗어야 한다. 가공의 회계정보로 경영 성과를 부풀려 높은 보수와 사회적 존경을 얻고자 하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직원들을 닦달하여 분식회계를 강요하는 구태를 버리자.
또 하나는 회계법인이 정신차려야 한다. 최근 국내외 회계법인의 수난은 자업자득의 결과다. 과거 관행과의 단절, 회계감사의 사회적 의의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물론 사회적 회계 의식 내지 윤리 부재의 상황에서는 결코 회계 감사의 신뢰성이 확보될 수 없다는 점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회계부정은 반사회적 범죄행위이다. CEO와 회계법인이 과거의 관행에서 탈피하여 성찰적 자세로 오늘의 회계 위기를 바라보고 내일을 조망할 수 있다면 우리의 회계 문화와 시스템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이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 발전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회계인들의 회개(悔改)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정희 하나회계법인 전무·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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