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청계천 복원, 이제 시작이다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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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개통 소식에 다들 표정이 환해지는 것은 드라마틱한 ‘뒤집기 효과’ 덕분이다. 고가도로 아래 버려졌던 지역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재탄생했다. TV 속의 ‘신데렐라 스토리’에서나 가능했던 통쾌한 역전극이 도심 한복판에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청계천을 보면서 ‘낙후된 강북도 달라질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듯하다.

도시의 후미진 곳을 화려하게 변신시킨 사례는 외국에도 있다. 영국 런던의 바비컨센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집중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 세워졌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로 살벌했던 곳에 세계 최고의 공연장이 들어선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은 폐쇄된 기차역이었으나 지금은 밀레, 모네, 고흐의 걸작이 걸려 있는 명소(名所)다. 미술관 건립을 주도했던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요즘도 이름이 거론된다. 그가 낡은 기차역이 아닌 평범한 장소에 미술관을 세웠더라면 그리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1982년 바비컨센터가 문을 열기까지 27년의 사업 기간이 소요됐고 1986년 개관한 오르세 미술관은 9년이 걸렸다. 청계천을 2년여 만에 복원(復元)해 낸 것은 놀라운 추진력이다. 사업규모도 5.8km의 긴 하천을 복원한 청계천 쪽이 더 크다. 각국의 건축가, 행정가들이 청계천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 청계천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 개발과 같은 경제 효과, 시민의 휴식 공간 확대 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당초 기대치는 600년 고도(古都)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회복하자는 측면이 컸다. 복개공사로 묻혀 버린 청계천의 역사를 되살려 서울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큰 기대는 어려웠다. 엄밀히 말해 청계천사업은 ‘복원’보다는 새 다리를 놓고 물길을 내는 ‘신규’사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청계천 복원 하나로 서울의 사라진 역사성을 다시 찾겠다는 건 무리다. 한번 훼손된 역사와 문화는 이처럼 되살리기 힘들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청계천에 그치지 말고 청계천 북쪽의 종로 일대와 계동 가회동 재동 등 북촌(北村)을 함께 묶어 범위를 확대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종로와 북촌은 과거 서울의 사대문 안에서도 핵심 지역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일제강점기 청계천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생활권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한반도 강점 이후 서울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청계천 남쪽에 자리 잡았다. 3·1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들이 북촌과 종로 일대에 집중된 건 우연이 아니다. 북촌에 살던 조선의 지식인과 종로 일대의 종교 사회단체들이 힘을 모아 3·1운동을 이끌었으므로 청계천 북쪽은 3·1운동의 심장부였다.

독립운동뿐 아니라 조선시대의 문화유적과 근현대사의 중요한 역사 현장들이 고스란히 이곳에 몰려 있으나 외면당하고 멸실(滅失)되고 있다. 민족정기를 외치는 사람들조차 서울의 어디에서 민족운동의 소중한 역사가 이뤄졌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항일 의거가 일어났던 역사 현장의 표지판이 엉뚱한 곳에 놓여 있어도 무관심하다.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옛 도시 서울을 재발견하고 역사성을 보존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 민족사에 남을 만한 유서 깊은 가옥이나 건물은 자치단체가 매입해 후대에 넘겨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서울의 역사 현장을 알리는 답사 프로그램도 중요하다.

강북을 현대화된 강남과 똑같이 만드는 것이 강북개발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외국에서는 신도시보다 ‘올드 타운’이 훨씬 각광받듯이 서울이 지닌 역사성과 전통을 활용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청계천 복원은 이제 시작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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