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치 않은 결투의 끝 ▼
2003년 한국에서도 결투가 벌어졌다.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을 둘러싼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대결은 ‘삼국지’ 장수들의 싸움이나 유럽의 명예결투에 못지않은 심각한 겨루기였다.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인 노 대통령과 과반의석을 자랑하는 거대 야당 한나라당은 자존심을 걸고 맞붙었다. 다른 이유들을 들이대지만 싸움의 목적은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를 가리는 것이었다.
한국의 결투가 ‘삼국지’나 유럽의 대결처럼 확실한 승부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회가 우여곡절 끝에 특검법을 재의결했지만 누가 승자인지 패자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겨냥한 대선자금 수사를 둘러싼 논란에 한나라당의 분권형 개헌 추진 움직임까지 겹쳐 후유증만 커지고 있다. 승부를 뒤집으려는 시도인가, 아니면 2차전의 조짐인가. 이러다가 뒷골목의 패싸움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관전자는 불안하다.
국회와 싸우는 노 대통령의 속내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회, 가장 강력한 야당을 만나서 정부가 힘이 든다”는 그의 발언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정혼란이 ‘국회와 야당 탓’이라는 뜻이다. 국회가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를 힘들게 할 정도로 막강한가. 수긍할 수 없다. 요즘 국회는 각 당에서 물갈이 주장이 나올 정도로 만신창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야당이 아니라 가장 심하게 국민의 지탄을 받는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라고 하지만 한나라당 지지율은 20%가 채 안 된다.
이쯤에서 관전자의 훈수가 필요한 것 같다. 여소야대(與小野大)는 국정혼란을 용서해주는 면죄부가 아니다. 대통령의 여소야대 탓은 비겁한 책임전가일 뿐이다. 집권당이 소수인 어려운 정치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 대통령이 본받으려고 했던 미국식 제도를 보자. 미국에서는 행정부는 여당이, 의회는 야당이 지배하는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가 보통이다. 1953년부터 2000년까지 반세기의 75%가 분점정부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분점정부의 고충을 지겹게 겪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집권 2년 뒤 실시된 중간선거 이후 줄곧 여소야대의 멍에를 짊어졌지만 당당히 재선에 성공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더 혹독한 여소야대를 겪었다. 95년 대통령이 된 그는 2년 뒤 총선에서 집권당이 대패하는 바람에 ‘반쪽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사회당 출신 총리가 이끄는 좌파 내각과 코아비타시옹(좌우동거정부)을 구성해 내치는 총리에게 넘기고 외교만 챙기는 한심한 신세가 됐다. 그러나 시라크 대통령은 2002년 재선에 성공해 그동안의 수모를 깨끗이 갚았다.
클린턴과 시라크가 여소야대 탓만 하며 국정운영에 소홀했다면 국민은 결코 그들을 다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네 탓’은 접어두고 대통령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야당이 장악한 국회와 무모한 싸움을 계속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여소야대를 성공의 발판으로 활용했다.
▼대통령이 ‘약자 타령’ 해서야 ▼
노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용예산과 가용인력을 가진 사람이다. 총리와 장관을 비롯한 수많은 파워 엘리트들의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정찬용 대통령인사보좌관은 얼마 전 “개각에 대비한 장관 후보군이 600명가량”이라고 했다. 수백명의 최상급 인재 속에서 적임자를 고르는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대통령이다. 일을 못하겠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하루빨리 약자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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