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닐 때 무시로 부르던 월남파병 맹호부대의 군가 ‘맹호는 간다’다. 궁핍한 농촌에 살면서 교과서에 있는 노래와 교회에서 배운 찬송가 이외에 다른 음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던 시절, 처음으로 익힌 ‘사제(私製) 노래’였던 것 같다.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로 시작되는 백마가와 청룡부대 군가도 지금까지 귓가에 쟁쟁하다.
▼군가였나 추모가였나 ▼
지금 생각하니 노래만 부른 것은 아니었다. 월남에 간 삼촌 또는 형이 보내왔다는 갖가지 미제 물건을 자랑하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했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두 눈을 잃고 귀국한 친구 형이 유령처럼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어린 소년의 노래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쟁터로 가는 용감한 군인을 위한 군가로 시작됐으나 가끔은 전사하거나 평생 불구가 된 참전용사를 위한 추모가로 변했다.
다음 달 이라크로 파견될 국군을 생각할 때마다 그 시절이 떠오른다. 꼭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이라크도 안전한 땅은 아니다. 미국이 파병 요청을 한 뒤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고, 파병 결정이 내려진 뒤에는 국회의 당당한 의사표시를 요구하는 사설 집필에 참여한 필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조속한 파병 결정을 바라는 칼럼도 썼으니 어린 시절 군가 애창은 그야말로 어린애 장난이었다. 군인들의 등을 떼미는 데 일정 역할을 한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나.
얼마 전 언론인과 교수들에게 파병 준비 상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조영길 국방부 장관이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그는 “장관으로서 결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라크 현지 상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병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하긴 전쟁터에 젊은이들을 보내는데 누가 마음이 편하겠는가. 누가 파병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정부와 국회는 고뇌 끝에 파병을 선택했을 것이다. 정부의 파병 결정을 옹호한 언론도 치열한 내부 논쟁을 거쳐 논지를 정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최대의 성과, 최소의 희생을 위해 계속 고심하고 노력해야 한다. 누구보다 애가 타는 사람은 파병용사의 가족이다. 그들은 혈육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할 것이다. ‘동아일보’는 그런 현실을 헤아려 ‘이라크에 축구공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정성을 모아 이라크에 ‘평화의 카펫’을 깔 수 있다면 자이툰 부대를 위한 최고의 안전대책이 될 것이다.
▼몸 성히 돌아오라 ▼
모금운동에 동참한 아버지가 곧 이라크로 떠날 아들에게 보낸 글이 가슴을 친다. 그는 ‘이라크로 갈 내 아들, 해병 보람아’로 시작된 편지를 이렇게 맺었다. “조국 대한민국은 너에게 이라크의 평화를 재건하라고 명령했다. 이 아버지도 너에게 명령한다. 무사히 돌아오라. 몸 성히 돌아오라.”
엊그제 정부는 이라크 재건지원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성우회원과 만찬을 하며 파병부대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로 정부가 혼란에 빠져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자이툰 부대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만은 믿고 싶다.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다면 정부에 이렇게 명령할 것이다. “파병 장병들이 이라크의 평화 정착과 재건 임무를 완수하고 몸 성히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와 지원을 하라.”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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