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만은 못하지만 우리에게도 휴가라는 좋은 제도가 있어 무더위를 이기게 한다. 길어야 1주일이 보통이지만 여름휴가는 모든 국민의 꿈이다. 여름휴가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기초조직인 가정의 삶까지 윤택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국민이 주인이라더니▼
그러나 올 여름휴가는 예년 같지 않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수입 감소 등의 경제적 이유로 여름휴가를 포기했다고 답했다. 주머니 사정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 해도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느긋하게 휴가를 즐길 분위기가 아니다.
위에서부터 그런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대통령의 마음은 숯검정이 돼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속이 까맣게 탄 대통령,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노 대통령의 마음만 숯검정이 되었겠는가. 이 의원은 ‘주군(主君)’을 향한 충성심을 그렇게 표현했겠지만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유권자들을 잊지 않았다면 국민의 타는 가슴을 더 걱정해야 한다. 똑같이 속이 편치 않지만 대통령에게는 충성스러운 측근들이라도 있다. 힘없고 기댈 데 없는 국민은 과연 누구로부터 위로를 받는단 말인가. 출범할 때 ‘국민이 주인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현 정권의 핵심세력들이 위만 쳐다보면 국민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휴가는 왜 있을까.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행을 위해, 고달픈 현실을 잊기 위해…. 수많은 대답이 있을 것이다. ‘재충전을 위해서’라는 답도 모범답안이 될 만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 일해야 하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편안한 마음으로 떠나, 휴가기간이나마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면 프랑스인들은 여름휴가가 끝나는 9월 초를 항트레(Rentr´ee)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하면 ‘휴가에서의 복귀’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각급 학교의 새 학년이 시작되고 휴가를 끝낸 어른들은 다시 생업전선에 뛰어든다. 충분한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한 뒤 새로운 각오로 일을 재개하는 것이다. 9월이 되면 ‘프랑스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국력이 별 건가. 국민 개개인의 총합이 국력, 나라의 힘이다.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한 뒤 새로운 에너지와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일터로 돌아오는 국민을 가진 나라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재충전을 잘하면 국력은 당연히 커진다.
▼국력 재충전 시급하다▼
국민과 정부가 믿지 못하고, 끼리끼리 갈라져 사사건건 으르렁대는 나라의 국력이 커질 수는 없다. 국민소득 1만달러까지는 열심히 하면 어느 나라든 달성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2만달러에 도달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편 가르기로 날을 지새우면서 어떻게 2만달러 달성을 위한 실력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평범한 국민은 큰 욕심이 없다. 이미 이 정권과 1년 6개월을 살아봤는데 새삼스레 큰 기대를 하겠는가. 휴가철이니 제발 휴가라도 맘 편히 가게 하라. 10년 뒤 20년 뒤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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