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南北 한통속’ 억울하지 않은가

  • 입력 2004년 9월 22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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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은 한반도가 운명적으로 짊어진 재앙인가. 북한 핵으로는 모자란다는 것인지 남한 핵까지 불거져 남북이 모두 세계의 비난대상이 됐다. 이러다가는 핵 문제가 등장하면 자동으로 ‘코리아가 골치’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 같다. 공연한 걱정이 아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남한 지도자와 북한 지도자를 혼동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남한엔 족쇄, 북한엔 무기▼

남북한은 얼마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손을 맞잡고 공동입장까지 했으니 남과 북을 철저히 구분해 달라는 요청을 외국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우리야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 만큼 남의 일에 관심이 많지만 외국인, 특히 서양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로 살지 않는가.

억울한 일이다. 같은 민족의 문제지만 남과 북의 핵은 엄연히 다르다. 북한의 핵 활동은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다. 북한 스스로 핵무기 보유를 공언하며 국제사회와 맞서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북-미 제네바 합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공동선언을 모조리 깬 불법행위다.

반면 남한의 핵 물질 실험은 핵무기와는 관련이 없는 실험실 차원의 연구 활동이다. 신고 의무 불이행 수준의 문제가 있을 뿐 남북합의도 국제조약도 위반하지 않았다. 더구나 한국은 우라늄 0.2g과 플루토늄 80mg을 둘러싼 의혹을 깨끗이 씻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선선히 수용했다. 원하는 대로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통일부 외교통상부 과학기술부 장관이 나서 ‘핵무기는 꿈도 꾸지 않는다’는 선언까지 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큰소리를 치고, 남한은 주눅이 들어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북한은 “남조선 비밀 핵 실험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해명되기 전에는 우리의 핵무기 계획에 대해 논의하는 마당에 나갈 수 없다”며 기고만장이다.

IAEA 이사회에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한국의 실험을 ‘심각한 우려사안’으로 규정한 데 이어 우방인 일본까지 계속 우려를 표명하면서 조속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어어” 하는 사이 남과 북의 핵이 비슷한 수준의 우려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북한의 불법행위는 논외로 치자. 6자회담이 3차례 열렸지만 지금까지 협상은 사실상 북한을 어떻게 달래느냐에 모아졌다. 북한 달래기의 주역은 우리 정부다. 북한이 가당치도 않게 남한의 핵물질 실험을 걸고넘어졌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핵 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다”고 밝혔다. 북핵에 대한 우려는 어디로 가고, 주제넘은 간섭에 대한 반격은 어디에 숨겼나.

이래서는 북한의 공갈을 막을 수 없다. 과격하게 대응할수록 반대급부가 커지는데 북한이 왜 판돈 키우기를 중단하겠는가. 북핵이 남북 교류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북한은 현 상황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11월로 다가온 미국 대선 때문에 6자회담은 휴면상태에 들어갔다. 9월 말 이전 4차회담을 개최키로 한 3차 6자회담의 합의는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다.

▼북핵에 대한 경고로 돌아가라▼

북의 핵은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든든한 무기가 되고, 별것 아닌 남의 핵물질 실험은 족쇄가 된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미 대선 이후 전개될 ‘미국식 해법’에 의존할 생각이라면 그래도 좋다. 그게 아니라면 서둘러 국면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북핵에 대한 우려, 북이 핵무장을 했을 경우에 대한 준엄한 경고로 돌아가는 것이 방법이다. 북한과 한통속으로 대접받는 것이 억울하다면 사소한 실험을 6자회담에 연계시킨 북한의 억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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