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총리가 막말하는 나라

  • 입력 2004년 10월 20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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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성적을 29위로 매긴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보고서가 여러 사람을 흥분시켰다. 순위도 불만이지만 1년 만에 11단계나 굴러 떨어졌으니 화를 낼 만하다. 정부가 국정운영을 잘못해서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다는 책임 추궁 또한 당연해 보인다. 어떻게 일군 나라인데 한 해 사이에 급전직하, 수모를 당하게 한단 말인가.

정부도 덩달아 흥분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발끈했다. 그는 “내가 이 기관에 있었다면 창피하고 겁이 나서 이런 발표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심히 일한 국민만이 가질 수 있는 자존심이 벌컥 화를 내게 했을 것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욕이 없다면 분노도 불만도 표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집권세력의 신문 총공격▼

그러나 흥분하고 화만 낼 일이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국가경쟁력 상위 리스트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준이 됐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정부도 국민도 겸손할 필요가 있다.

국무총리라는 사람이 국가 대표로 외국에 나갔다가 폭탄주를 마시며, 가장 많은 국민이 구독하는 대표적 신문들을 향해 “내 손안에 있다” “까불지 말라”는 막말을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개인 이해찬이 아니라 총리이기에 그의 말에는 품위와 권위가 있어야 한다. 사생활이야 간섭할 바 아니지만 공적활동은 시정잡배와 달라야 한다. 총리의 봉급과 활동비의 원천인 세금을 내는 국민은 그런 요구를 할 자격이 있다.

이 총리의 발언이 전해진 날, 윤태영 대통령제1부속실장은 ‘한국 정치의 새로운 실험-총리 중심 국정운영 70일’이라는 제목의 국정일기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총리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총리는 밖에서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공격하고, 청와대는 안에서 총리를 띄우기로 역할 분담이라도 한 것인가.

하긴 이 총리를 기용한 노 대통령부터 만만치 않은 입심을 과시해 왔다. 노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것은 결코 무겁다고 할 수 없는 ‘입’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은 수도 이전 반대여론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이자 퇴진운동이라고 몰아붙이며 ‘정부청사 앞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신문사’를 공격했다. 청와대 브리핑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동아 조선을 향해 ‘저주의 굿판을 집어치우라’는 악담을 했다. 권력자의 막말이 저주인지, 신문의 비판이 저주인지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이 나라 상층부는 현실을 제대로 보는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국정일기(國政日記)’라는 거창한 제목의 글에는 대통령 찬가(讚歌)가 넘친다. 사분오열이라는 말로는 감당 못할 만큼 쪼개진 국론에 대한 책임감, 20%대에서 헤매고 있는 지지도에 대한 반성, 먹고살게 해달라는 서민의 아우성에 대한 고민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讚歌만 부를 땐가▼

지금 인터넷에는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논쟁이 아니라 전쟁판이다. 욕설까지 게재하는 언론도 문제지만 수많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 대통령과 총리가 더 문제다. 거리에 나가 보라. 대통령이나 총리를 제대로, 점잖게 호칭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가.

참여정부 출범 후 20개월이 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5년 임기의 3분의 1 지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100m 경기로 따지면 30m쯤을 달리고 있고, 마라톤으로 치면 15km 지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결과를 걱정해야 할 때가 됐다. 제대로 달리고 있는지, 이대로 가면 몇 등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자면 민심부터 살펴야 한다. 지금처럼 민심을 외면하는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의 순위는 29위로도 과분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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