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당초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얼굴만 비칠 예정이었다.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에 가는 길에 잠깐 덴마크에 들러 눈도장만 찍고 17, 18일 정상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런 그가 생각을
바꿔 18일 코펜하겐에 나타났다. 그는 구속력 있는 결론을 만들어 내기 위해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만나는 등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내년 G20, 다자외교 강국 계기로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에는 193개국의 대표가 참석했다. 무려 130개국의 정상이 한꺼번에 모였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인식한다는 것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기후변화, 금융위기, 군축, 핵 비확산,
인권 같은 범세계적 과제는 어떤 국가도 혼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셋 이상의 국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찾는
다자외교(multilateral diplomacy)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다자외교의 강세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는
세계적 금융위기 해소를 위해 출범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다.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면
다자외교의 주역인 다자협의체에 참여해야 한다. 파워그룹에 들어가야 발언권이 커져 목표 달성 가능성이 높아진다. 코펜하겐
회의에서도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 중국이 주도하는 개도국 그룹이 양쪽으로 갈려 뜨거운 외교전쟁을 벌였다.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올해 다자외교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G20 정상회의 창립멤버로 참여해 내년 11월 정상회의 유치에
성공했고, 지난달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원조 선진국 클럽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됐다.
오준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조정관은 “이제는 한국이 가입 여부를 선택할 대상이 남아 있을 뿐, 뛰어넘을 수 없다고 느낄 만한
다자협의체는 없다”고 했다. 큰 국제적 세력인 비동맹그룹에는 여전히 북한만 가입하고 우리는 옵서버여서 불리한 상황이지만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드는 나라가 눈에 띄게 줄었다.
서울에서 개최되는 내년 G20 정상회의는 우리가 다자외교
강국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은 벌써 G20 개최국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국가브랜드위원회 회의에서 “첫 정상회의에 갔을 때는 앉아 있다가 나가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외국 정상들이 내 자리로 와서 자꾸
이야기를 붙인다”며 정상회의에서 받는 대우가 1, 2년 사이에 달라졌다고 전했다.
국제정치학자 한스 J
모르겐소가 말한 대로 ‘외교 역량은 총체적인 국력의 표현’이다. 국제적 변화를 이끌어 가는 ‘글로벌 거버넌스’에 동참하게 됐다는
안도감에 머물지 말고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걸음 더 나갈 수 있다. 싱가포르 스웨덴 스위스는 국력과 인구에 비해 국제적 비중이
큰 나라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인구 150만 명 이하의 작은 국가 모임인 ‘스몰 스테이트 포럼’을 주도해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국제 이슈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할 인재 양성을 위해 좀 더 힘을 기울인다면 싱가포르가 부러울
이유가 없다.
북한 특별초청도 검토해야
한국이 거둔 다자외교의 성과는 어떤 측면에서는 행운이 작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G20 참여는 역설적이지만 금융위기의 선물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덕을 보기도 했다. 그런 여건을 활용하는 것도 능력이다. 북핵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내년 G20에 북한을 특별참가국으로 초청해 돌파구를 찾는 시도도 해 봄 직하다. 개최국으로서 다자외교의 힘을 국익
극대화를 위해 활용할 방법은 찾으면 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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