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軍)이 나로호처럼 추락했다. 감사원의 천안함 사태 감사 결과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술에 취한 합참의장이 지휘통제실을 비웠다가 복귀한 뒤 자신이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문서를 꾸몄다는 그제 감사원 발표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전직 대북 공작원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구속된 육군소장 사건도 군의 신뢰와 명예에 먹칠을 했다.
한 예비역 대장은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군 출신으로 부끄럽다는 말도 했다. 우리 군이 고작 이런 수준이었나.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는 것은 고사하고 속절없이 당하고도 거짓보고나 하는 형편없는 조직이란 말인가.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햇볕정책이 軍의 추락 부추겼다
어쩌다가 군이 이런 신세가 됐는가. 10여명의 예비역 장성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거 지휘관으로 군을 이끌었고 지금도 국가와 군을 사랑하는 국방 전문가들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에 대한 엄중한 대응, 그리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역설해온 분들이다.
예비역 장성들의 진단은 비슷했다. 대부분 천안함의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군사적으로 완벽한 경계는 힘들다. 더구나 북한의 주무기는 기습 도발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군은 제대로 대비하지 않았다. 국민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예비역 장성들도 이 점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문제는 군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근인(根因)에 대한 분석이다. 햇볕정책 10년의 폐해가 군의 무능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A장군은 군의 근본 의식, 즉 군기(軍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햇볕정책이 낳은 부작용이 크다. 적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다. 과거 10년간 장교들 사이에 ‘정부가 화해협력을 추진하는데 우리가 뭐 하러 강력한 대북 대응을 위해 고생하느냐’는 인식이 퍼졌다. 야전 지휘관은 물론 정책파트인 국방부와 합참 인사들도 그런 인식 속에 지내왔다. 군은 추상같아야 하는데 의식이 해이해지고 충성심도 엷어졌다.”
B장군은 지난해 전방부대에 강연을 다니면서 깜짝 놀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군에서 정신교육을 강화했지만 내용이 부실했다. 정작 군에 필요한 통일과 주적(主敵)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교들이 진급과 출세에 지장이 생길까봐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는 거론 자체를 꺼린다. 전반적으로 군 간부들의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다.”
군 의식에 대한 경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2008년 전군 지휘관회의에서 “매년 입대하는 20만 명의 장병 중에 국가관 대적관(對敵觀) 역사관이 편향된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돼있다”며 개탄했다. 그래서 육군 소장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이 심상치 않다. C장군은 “군에 불순분자가 상당수 침투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전반적인 공안기능 강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전쟁은 피하는 자를 쫓아다닌다”
일부 군 인사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해졌다. 예비역 장성들은 앞으로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비하는 차원에서 문책이 필요하다고 동의하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천안함 사태에 대한 확실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 ‘도발하면 죽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예비역 장성들은 북의 전략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식시킬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전작권 전환 연기를 꼽았다. 우리의 독자적 억제능력 제고를 위해 미사일 사거리를 300km로 제한한 한미 미사일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예비역 장성들의 진단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다. 군을 제대로 세우고 북한의 도발야욕을 꺾을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 대통령과 국민, 그리고 군이 “전쟁은 피하는 자를 쫓아다닌다”는 경고를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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