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26일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수용소 군도’를 학생들의 필독서라고
치켜세웠다. 수용소 군도는 옛 소련 스탈린 시대 악명 높던 국가보안위원회(KGB)가 운영하던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한
작품이다.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솔제니친이 3년 뒤 수용소 군도를 출간하자 옛 소련은 그에게 반역죄를 씌워 사형을
선고했다. 솔제니친은 다음 해 추방돼 독일 스위스 미국에서 20년을 망명자로 살아야 했다. KGB 요원이었던 푸틴의 뒤늦은 수용소
군도 칭송은 40년 전 노벨상이 뿌린 씨앗의 가치를 실감하게 한다.
탈북자들의 사투, 류샤오보 못지않다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도 솔제니친과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끌었다. 나라만 옛 소련과 중국으로 다를 뿐 민주화와 인권 개선을
유도한다는 노벨위원회의 목적은 동일하다. 노벨위원회 위원인 예이르 루네스타는 옥스퍼드대 강연에서 “노벨위원회 위원들 사이에 중국의
반체제 인사 탄압 문제를 이슈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었다”면서 “류샤오보는 중국의 인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자 전
세계 인권의 상징이 됐다”고 강조했다.
노벨 평화상은 이미 중국에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월 8일 수상자 발표에서 12월 10일 시상식에 이르기까지 두 달 동안 중국의 반체제 인사 탄압은 세계의 주요 뉴스로 다뤄져
중국을 압박한다. 중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지만 중국 국민 대다수가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리고 많은 중국인이 왜 정부가 중국인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라는 경사(慶事)를 한사코 부정하는지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서방세계의 외교공세도 만만치 않다. 지난주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법무장관과 캐나다 외교장관은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하면서 류샤오보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했다. 다음 달 11, 12일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노벨 평화상의 파장을 키울 것이다. 지미 카터 등 역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 15명은 “G20 정상들이 류샤오보가 석방될 수
있도록 중국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공개서한을 통해 촉구했다. 류샤오보의 형과 동생도 G20 정상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노벨위원회에 제안하고 싶다. 아니 호소한다. 중국의 터부를 건드린 김에 시야를 더 넓혀 탈북자들에게 관심을 옮겨 달라.
탈북자들의 투쟁은 류샤오보의 싸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조만간 국내 입국 탈북자가 2만 명을 돌파할 것이다. 9월 말 현재
1만9717명이 입국했고 한 달 평균 200명 정도씩 늘기 때문에 다음 달 둘째 주가 되면 2만 명을 넘지 않겠는가. 중국 대륙을
떠도는 탈북자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북한주민의 탈북은 이미 국제 이슈가 됐다.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 영국 등
23개국에 정착한 탈북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국제사회는 목숨을 걸고 탈출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의 만성적 기아와
인권탄압 실상을 생생히 알게 됐다. 유엔도 개입해 해마다 북한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노벨위원회 ‘내년의 결단’을 기대한다
각국 정부 인사와 의원, 국제사법기관 멤버, 역사 사회과학 철학 법학 신학 교수, 평화연구기관과 외교정책 연구소 책임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노벨 평화상 수상 기관 관계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 등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자들의 책임이 크다. 탈북자를
후보자로 추천해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말뿐이 아님을 보여주기를 호소한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이며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노벨 평화상의 감동이 내년에도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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