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죽음이 되었고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 미국의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인류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보면서 떠올린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이다. 북한의 핵공격 위협이 남한에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사례는 없을 것 같다.
오펜하이머는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 주의 앨러모고도 서북쪽 사막에서 실시한 핵실험을 9km 떨어진 통제본부 벙커에서 지켜봤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이던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핵개발을 지휘했다. 핵실험에 참여한 과학자와 군 장교들은 엄청난 폭음과 함께 흰색 섬광이 사방으로 퍼진 뒤 거대한 불덩어리가 점점 커지면서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다시 붉은색으로 변해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폭발로 생긴 엄청난 열기와 폭풍이 주변 수십 km 지역을 휩쓸었다.
“핵은 죽음이자 파괴자다”
오펜하이머는 핵실험 성공 이후 ‘핵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행복 대신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직후 백악관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대통령 각하, 제 손에는 피가 묻어 있습니다”라는 말로 인류 최악의 무기를 만든 것을 후회했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한반도에는 죽음과 파괴가 닥칠 수밖에 없다.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의 위력을 확인한 뒤 핵사용 포기를 촉구하는 과학계의 반핵(反核) 캠페인을 주도했다. 모든 핵보유국이 오펜하이머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 핵을 억제용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유독 북한만 핵 선제공격 협박을 하고 있다. 북한은 동족을 핵으로 공격하겠다는 패륜을 더 얹었다.
북한의 위협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김일성 가계의 도발 DNA 때문이다.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켰고 김정일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와 아웅산 테러를 주도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은 김정일과 김정은의 합작품이다. 김정은은 세습독재와 함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발 버릇을 물려받았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상투적인 대응으로는 이성을 잃은 북한을 저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최악의 도발에는 최강의 대응으로 맞서야 한다. 마침 ‘북한 정권교체(레짐 체인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차 핵실험 이후 핵공격까지 거론하는 북한의 세습독재 체제가 존속하는 한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레짐 체인지는 외부의 개입이나 혁명, 쿠데타 등의 내부적 요인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의 변화를 기다려야 한다는 온건주의자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드러나고 있다.
최악 도발엔 최강으로 대응해야
중국과 미국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중국 중앙당교 기관지 쉐시(學習)시보의 간부는 “중국은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정책을 추진하거나 북한의 정권교체를 통해 핵을 포기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도 14일 아시아 정책 시리즈 강연에서 “미국과 중국은 북한에서 정권 붕괴 사태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공동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미 정부에 충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행복한 통일시대 기반 구축을 다짐했다. 북한의 핵공격 위협을 해소하지 않으면 통일시대 준비는 불가능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인터뷰에서 “한중 정상이 남북통일에 대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일에 대비하는 것이 핵 문제 해결의 종착점”이라는 말도 했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통일과 평양의 정권교체 거론을 피하던 비겁한 시대는 지나갔다. 현실로 다가온 북핵 위협 앞에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북한의 세습독재 종식보다 나은 북핵 해결 방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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