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에 대한 북한의 생각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 비료회담이 열렸다. 김영삼 정부 말년에 북한이 요청한 20만 t의 비료 지원을 매듭짓기 위한 회담이었다. 정세현 수석대표는 “비료 20만 t을 주되 이산가족 상봉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하라”는 지침을 받고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회담은 북한의 황당한 주장에 막혀 결렬됐다.
북한 수석대표 전금철은 이산가족 상봉보다 비료 지원을 중시하는 북한식 인도주의론을 폈다. “비료 문제는 식량 문제고 먹는 문제다. 먹는 문제만큼 절박한 인도적 문제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료 문제는 인도적 문제다. 반면에 남측이 요구하는 이산가족 상봉은 정권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서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산가족 상봉은 정치적 문제다.”(정세현의 통일토크)
어제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산가족이 금강산에서 혈육을 만나 눈물바다를 이뤘지만 상봉행사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획기적 계기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의 약속 위반으로 한 차례 무산됐다가 간신히 만남이 성사됐기 때문에 계속 이어질지 의문이다. 이산가족의 고통을 비료보다 하찮게 여기는 북한의 인식에도 변화가 없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김칫국 마시는 소리가 요란하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아무 말이 없는데 5·24 대북(對北)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킨 인물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대리인임을 근거로 성급하게 남북정상회담을 기대하는 관측도 있다. 북한이 ‘남한 흔들기’에 성공했다고 여길 만한 변화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과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에 영향을 미쳤다면 기초적 인도 사업인 이산가족 상봉 실현이 이토록 힘들었겠는가. 2000년 6월, 2007년 10월 정상회담은 2014년 남북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그들만의 회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의 효과가 단명한 이유가 뭘까. 남북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을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 대화하면서 북핵 해결을 위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공조하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 클린턴은 임기 말 중동사태와 북핵을 저울질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로 발길을 돌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더 아슬아슬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에게 핵 포기라는 말을 받아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소장은 “미국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한국은 크리스토퍼 힐 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북한과 진행한 북-미 협상을 의심했다”는 말로 양국의 갈등을 묘사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핵 문제에 못을 박았다면 김정일과 김정은이 핵실험을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과거 정부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앞으로 남북 대화가 이뤄질 경우 미국과의 공조를 염두에 둬야 한다. 북핵 해결 없는 남북 평화는 공허한 목표다. 우리 정부가 지난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달리 “비핵화를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촉구한 것은 기대를 걸어봄직한 변화다.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기회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여러 차례 “같이 갑시다”라는 한국말로 강력한 동맹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같이 가자”고 제의해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면서 미국을 강력한 북핵 해결 파트너로 잡아야 전면적인 남북 화해의 기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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