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제발 한곳만 쳐다보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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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해양경찰청의 올해 예산을 들여다보면 세월호에 갇힌 실종자 구조에 실패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해경은 예산 1조1136억 원 가운데 2080억 원을 함정 건조에 배정했다. 경비역량 강화 예산도 60억 원이나 된다. 하지만 구조장비 도입 예산은 23억 원에 불과하다. 수색구조역량 강화에는 달랑 13억 원이 책정됐다.

해경의 대형 선박 확보는 필요하다. 일본의 독도 침탈 기도와 중국의 공세적 해양 정책에 맞서려면 해경도 강해져야 한다. 크고 빠른 배가 많으면 해적 수준으로 변한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를 강력하게 단속할 수 있다. 그러나 해경은 선박 건조에 몰두하느라 또 다른 주요 임무인 구조능력 배양을 소홀히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바닷속에서 죽어가는 국민을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무능 해경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유한한 자원과 능력을 한곳에 과도하게 집중해 다른 쪽에서 터지는 재앙을 못 막은 사례가 어디 해경뿐인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청와대 상공을 유린한 무인기 사태를 다루면서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군사적 해트트릭(military hat-trick)’을 달성했다”고 보도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이어 무인기 침투로 한국의 바다, 육지, 하늘을 모두 유린했다는 의미다. 북한에는 축구 경기에서 한 선수가 세 골을 넣은 것과 같은 성공이고 남한에는 견디기 힘든 치욕이다. 우리 정부와 군은 바다와 육지를 겨냥한 북한의 도발 대비에 몰두하느라 하늘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으로 최악의 위기를 자초한 국가정보원도 다를 게 없다. 국정원은 온갖 무리수를 동원하는 간첩수사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 국정원이 탈북자로 위장한 교활한 중국인을 적법한 절차를 거쳐 단죄하는 지혜를 배웠다면 국민의 찬사를 들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놀라 선박사고 예방과 구조대책에만 몰입하면 어딘가 다른 곳에서 커가고 있는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안보와 재난예방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비가 철저하면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계속되는 재앙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제발 한곳만 쳐다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9·11테러 이후 만들어진 미국의 국토안보부는 ‘전방위 위험 접근(all hazard approach)’을 목표로 군사적 비군사적 위기를 모두 담당한다. 우리가 참고해야 할 좋은 모델이다.

정부는 어제 혁명적 발상으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국민에게는 별다른 위안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대로 3000개가 넘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두고도 정부는 정작 위기가 닥치자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부터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시카고대의 클라크 리 교수는 “관료제는 모든 상황에 대비돼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는 환상문서(fantasy documents)를 생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위기대책을 담은 문서를 만드는 공무원과 이를 업무에 적용하는 공무원들은 “모든 상황이 통제가능하다”는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이 환상문서로 채워지면 재난대비와 구조는 뜬구름이 될 수밖에 없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대형 재난이 연이어 터져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고대 중국 기나라 백성이 했던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라는 걱정(기우·杞憂)이 우리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듯한 느낌이다. 혈육을 잃은 유족들은 실제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일 것이다. 공직자들도 이대로 가다가는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분발해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해양경찰청#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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