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심야 교통 톡톡]눈물 젖은 1만원 지폐, ‘야행’을 택한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2일 03시 00분


《 서울의 밤은 누가 움직일까요.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운행하는 심야 ‘올빼미’ 버스와 콜버스, 지하철을 타고 밤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1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야행’을 택한 사람, 야간 ‘특수’를 잡기 위해 뛰는 사람 등 사연이 다양했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지하철 막차부터 심야 콜버스까지


“매일 새벽 5시에 N37번 심야버스를 타고 식재료를 사러 가락시장에 갑니다. 심야버스에는 생동하는 듯하면서 동굴 같기도 한 그런 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이창진 씨(37·중국 음식점 운영)

“강남역에서 카카오택시가 안 잡혀서 고생하다 콜버스가 떠올랐어요. 앱을 설치하고 호출하기 버튼을 누르자마자 휴대전화로 곧 도착한다는 문자메시지가 오더라고요. 평소 새벽 2시에 타는 택시비의 60%로 집에 안전하게 들어갔죠.” ―유현주 씨(21·대학생)

“안국역 기준으로 대화행 금요일 막차는 0시 11분, 토요일 첫차는 새벽 5시 38분이에요. 일이 늦어지면 종종 평일 막차나 토요일 첫차를 타게 돼요. 지하철은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하잖아요. 막차 시간까지만 역에 도착하면 됩니다. 단돈 2000원 안팎으로
집이 있는 원당까지 갈 수 있어요. 9703번 광역버스도 있지만 지하철보다 훨씬 일찍 끊겨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에요.” ―이주연 씨(35·은행원)

“밤 12시쯤 되면 공부 더 하고 갈까, 집에서 할까. 도서관에 앉은 자들의 큰 고민이에요. 집에 가면 편하다 보니 공부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고 잠들게 되거든요. 다행히 N61번 심야버스가 학교 앞을 지나가는 덕분에 ‘새벽 2시까지 몇 문제 더 풀자’고 생각하며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게 됐죠.” ―심규종 씨(27·대학생)

“한밤엔 별수 없죠. 택시만 한 게 있나요. 문에서 문까지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건 택시밖에 없죠. 단지 아쉬운 건 월급이 80만 원 남짓인데 집까지 택시를 한 번 타면 2만 원이 나와서 자주 못 탄다는 거예요.” ―한민경 씨(26·패션지 직원)

심야교통 종사자들의 애환

“심야버스 기사님들은 오후 11시경 출근해서 밤 12시에 차고지를 출발합니다. 4시간가량 운전을 하고 새벽 5시쯤 퇴근을 하시죠. 안전을 위해 최고 시속을 70km로 제한하는 과속방지장치도 설치해 두고 있습니다.” ―김모 씨(39·A 심야버스 운수회사 직원)

“막차를 타는 분들은 40, 50대 남성분들이 많아요. 또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아닌 목요일엔 술을 드신 분들이 많이 타십니다.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뛰어오시는 분들에게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묻고 ‘오늘 ○○방면 열차는 운행이 끝났습니다’라고 안내해 드리죠.” ―홍성원 씨(21·지하철 사회복무요원)

“오후 5시∼새벽 5시까지 2교대로 일합니다. 주로 밤에 카카오택시 블랙을 찾는 분들은 늦은 시간 안심귀가 서비스를 원하는 분들이에요. 밤 시간에는 요리조리 곡예운전을 하는 차량이 많은데 그들을 피해 최대한 거칠지 않게 운전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의 씨(59·카카오택시 블랙 기사)

심야의 독특한 풍경

“심야버스 풍경이 참 신기해서 승객들을 천천히 바라보곤 해요, 손님 대부분이 일 끝내고 집에 들어가는 대리기사님이었지만 그 밖에 건물 청소하러 가는 여사님들, 교대하는 경비아저씨들도 계시더군요. 피곤해서 잠시 눈을 붙이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창진 씨

“고속버스 타고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조금 전 서울에 도착했어요. 오늘따라 택시 정류장에 사람들이 줄을 너무 길게 서 있더라고요. 피곤하기도 하고 기다릴 엄두가 안 나더군요. 마침 도곡행 마지막 열차가 0시 49분이어서 지하철 타러 빨리 가려고요.” ―고세중 씨(36·회사원)

“친구와 술 한잔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심야버스를 이용해 봤어요. 취객들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하고 깨끗했어요.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을 보니 ‘체험 삶의 현장’ 같은 느낌도 났고요. 여러 사람이 말없이 앉아 함께 심야의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한소이 씨(22·대학생)

정글 같은 심야 대중교통

“심야시간은 정글이 따로 없어요. 저를 호출한 손님을 모시러 부리나케 가고 있는데 중간에 취소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리고 밤에는 손님이 호출한 곳에 도착해도 손님이 술집 밖으로 나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정일남 씨(59·카카오택시 기사)

영업 동선이 N버스 있는 곳으로만 연결되어도 그날은 운이 좋은 거예요. 이상한 곳에 떨어지면 아파트단지를 등지고 몇 km씩 한참 걸어 나와야 하거든요. 춥거나 비가 오는 날엔 신발도 젖고 ‘만 원짜리 한 장 손에 쥐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싶어요.” ―정규호 씨(55·대리운전 기사)

“지금 심야교통 시장에서 대리셔틀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큽니다. 15인승 승합차에 28명이 타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과속으로 인한 사망사고도 있었어요. 보험처리도 되지 않아 보상받기도 힘들죠. 콜버스가 야간 교통 생태계에 일종의 교정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박병종 씨(30·콜버스랩 대표)

심야교통 타고 가는 사연

“매일 시장에서 생업에 매달리다 오랜만에 장사 일찍 접고 저녁을 먹으며 술도 한잔했어요. 2차를 가려고 종로2가 사거리에서 택시를 잡아 “홍대 입구요!”만 세 번 외쳤는데 세 번 다 앞문만 빠끔히 열리더니 목적지를 듣고는 쌩 가버리더라고요. 단거리에 세 명이다 보니 돈이 안 되니까 승차거부를 당한 거예요. 비도 오고 여자 셋에 우산은 한 개뿐이고 난감했죠. 정신없이 살다가 오랜만에 돈도 쓰며 놀았던 것뿐인데 뭐가 이렇게 계속 안 맞나 싶네요.” ―강현희 씨(52·광장시장 상인)

“택시 잡느라 시간과 체력을 버리는 게 제일 싫어요. 회사가 번화가에 있어서 그런지 매번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야근비로 벌충한다 생각하고 카카오택시 블랙을 타요. 차 안에 생수도 제공되고 폰 배터리도 충전할 수 있더군요. 비 오는 날엔 기사님이 우산도 씌워주시고 집에 잘 들어가는지도 봐 주세요. 둘째 조카를 임신 중인 언니에게도 추천해 줬는데 아이 데리고 타기에 담배 냄새 안 나고 유모차도 접어줘서 좋대요.” ―이모 씨(35·대기업 직원)

“급한 일로 부산에 내려갈 일이 생겨서 터미널 앞에서 택시 기사님을 찾았어요. 이미 술을 먹은지라 운전도 못 하고 내려가면서 이곳저곳 통화도 해야 돼서 고속버스를 타기도 힘들었죠. 일산, 판교, 성남 등 수도권 지명을 대면서 “5만 원, 3만 원”을 부르는 기사님도 있더라고요. 비슷한 지역으로 가는 사람들 모아서 지방 한 번 뛰는 건데 사람이 여럿 안 모이면 혼자서 몇 배를 다 내야 해요. 저처럼 아예 멀리 가면 요금을 사전에 협의할 수 있어요. 부산까지 50만 원에 세 시간 반 안쪽으로 도착한다고 하네요. 이제 출발할 거예요.” ―이모 씨(45·A선팅 대리점 운영)

 
오피니언팀 종합·안나 인턴기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졸업
#심야버스#서울의 밤#심야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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