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톡톡]어머니에게도 ‘쉿’… 정맥 인식도 안심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9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우리는 매일 관문을 통과합니다. 그 관문은 아파트 현관문이나 사무실 문, 컴퓨터 로그인 화면일 수 있습니다. 영문과 숫자, 특수기호까지 섞은 비밀번호를 눌러 그 문을 열지요. 비밀번호에 대한 경각심은 최근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정부청사 침입 사건으로 부쩍 높아졌습니다. 비밀번호에 얽힌 사연과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이러다 당한다…위험천만 비밀번호
 
“대학가 오피스텔에 살아요. 복도에서 어머니 연배 되는 분이 ‘○○아, 비번 좀 불러줘 봐…. 3, 7, 9, 8?’이라고 큰 소리로 번호를 하나씩 따라 부르시는 거예요. 옆집에 여학생 혼자 사는데 비밀번호를 ‘방송’하면 위험해질 것 같아 걱정되더라고요.”(박모 씨·40·대학 강사)

“건물 벽돌에 출입문의 비밀번호가 써 있을 때가 있어요. 그대로 누르면 열리죠. 배달하려면 비밀번호가 씌어 있는 게 편하죠. 매번 입구에서 고객에게 전화하면 번거롭고 요금도 나오니까요. 하지만 여동생의 집 앞에 비밀번호가 씌어 있으면 얼른 지우라고 할 거 같아요.”(임모 씨·24·배달원)

“어떤 디지털 도어록은 1234처럼 공장 출고 때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 상태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범죄에 악용될 수 있겠지요. 다가구주택 주인이 부동산 계약 때 집을 보여주려고 마스터키(모든 문을 열 수 있는 키)로 빈집에 들어가려면 세입자 동의를 구하는 게 원칙입니다. 전기충격기로 도어록을 여는 일이 많아서 2007년부터 생산되는 제품은 3만 V 안팎의 전기충격에도 견뎌요.”(고영호 씨·56·알파열쇠 대표)

“비밀번호 하나를 정해서 다른 사이트에서도 돌려쓰다가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 당했어요. 페이스북에 신분증을 찍어 보냈더니 임시비밀번호를 주더군요. 그 뒤로 모든 사이트의 비밀번호를 각각 다르게 바꾸고 수시로 더 좋은 비밀번호가 없을지 궁리합니다.”(박모 씨·43·회사원)

“가족 간 금융사고는 신뢰가 깨진 게 주원인이겠지만 비밀번호 공유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관리해 드리겠다며 통장과 비밀번호를 받은 뒤 돈을 임의로 빼 쓴 자녀가 있었어요. 가족이어도 비밀번호나 통장,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 등을 공유하는 건 신중히 결정해야 해요.”(김민규 씨·35·법무법인 조율 변호사)
헷갈리고 불편할 때도 많아
 
“사이트마다 비밀번호 체계가 달라서 로그인 할 때 애를 먹어요. 어떤 곳은 영문 대문자와 소문자에 숫자를 섞어야 하고 심하면 특수기호까지 넣어야 해요.”(이온유 씨·27·대학생)
“치매 예방을 위해 견과류도 챙겨 먹고 카카오톡에 이모티콘도 써 가면서 나이보다 젊게 산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로그인 화면이 뜨면 매번 앞이 깜깜해요. 나만 이러나 했는데 우리 막내도 그렇다는군요. 젊은 애들도 헷갈리는데 환갑 넘은 저는 차마 외울 엄두를 못 내겠어요. 수첩에 적어놓고 매번 찾아보는 게 마음이 편해요.(김인자 씨·65·주부)

“야간작업이 많은 편이라 모바일뱅킹을 애용합니다. 어느 날 비밀번호를 3회 연속 틀리는 바람에 접속이 아예 거부됐어요. 결국 거래를 정상화시키느라 은행까지 가서 비밀번호를 재설정했죠. 간편하게 하려는 모바일뱅킹인데 시간과 품이 더 드니 뭔가 뒤바뀐 느낌이랄까요.”(김지아 씨·29·화가)


진화하는 비밀번호 시스템
 
“기숙사 문 앞에서 손등을 갖다 대면 문이 열려요. 기계가 손등의 정맥 패턴을 인식해 문이 열리는 거죠. 생체정보가 미래의 비밀번호라잖아요. 또 최근엔 적외선 인식으로 바뀌어서 살이 많이 쪄서 정맥 인식이 어려운 사람들도 쉽게 문을 열 수 있게 됐다고 들었어요. 비밀번호를 외우거나 카드를 안 갖고 다녀도 되고 도용 우려도 없어서 좋아요. 그런데 평생 바뀌지 않는 생체정보가 범죄에 악용되면 피해가 클 거 같아요. 홍채나 지문 인식도 마찬가지겠죠.”(권모 씨·21·대학생)

“지문을 휴대전화 잠금장치로 등록해 놨어요. 비밀번호나 패턴 잠금은 자칫 옆 사람에게 보일 수 있어서 늘 불안했거든요. 지금은 휴대전화 홈 버튼에 지문을 갖다 대기만 하면 잠금화면에서 바로 바탕화면으로 연결돼요. 타인이 훔칠 수 없는 정보인 거죠. 물론 제가 잠들었을 때 아내가 제 손가락을 휴대전화에 갖다 대면 잠금이 해제될 수도 있지만….”(정윤찬 씨·35·C대 교직원)
자신만의 규칙 만들어라

“매번 다른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수고를 줄이려면 자신만의 규칙을 정하는 게 좋습니다. 사이트의 활자 수나 마지막 알파벳 등을 항상 쓰는 비밀번호의 몇 번째 자리에 어떻게 배치하겠다고 정해 두세요. 예를 들어 구글이라면 구글(google)의 글자 수인 6을 세 번째 자리에, 마지막 알파벳 E를 전체 비밀번호의 맨 끝에 넣는 방식이죠. 한 사이트에서 비밀번호가 유출되더라도, 다른 사이트에서 비밀번호를 유추할 수가 없거든요.”(김기백 씨·29·IT칼럼니스트)

“사람들은 비밀번호가 유출됐다는 걸 느끼면 비밀번호를 변경하려고 합니다. 그때 번거롭더라도 되도록 영어, 숫자, 특수기호를 섞어 반드시 9자리 이상의 비밀번호를 만드는 걸 권합니다. 새 비밀번호를 외우기 힘들 때에는 암호관리 기능이 있는 ‘알툴바’나 ‘라스트패스’와 같은 비밀번호 저장·관리 프로그램을 써 보는 것도 좋아요.”(정재원 씨·33·전직 보안업체 직원)
착한 번호, 나쁜 번호

“학교 커뮤니티에 익명 게시판이 있어요. 인증을 거쳐 우리 학교 학생만 이용할 수 있는데 ID나 비밀번호를 친구나 애인과 공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특히 요즘 취업난 시대에 ‘회사에 이번에 빈자리가 나서 후배님들에게 알립니다’와 같은 채용 관련 정보를 다른 대학 사이트로 몰래 퍼가기도 해서 문제가 돼요. 이를 막기 위해 인증절차를 강화하면 ‘○○대는 역시 배타적’이라느니 ‘그들만의 성’이라느니 손가락질을 받고요.”(조하늘 씨·22·대학생)

“저희는 주변의 병원과 약국을 검색해 주는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운영하는 신생 기업이에요. 회사와 앱을 알리기 위해 서울 강남역 12번 출구에 있는 물품 보관함 212번을 빌려서 ‘미니 약국’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앱 이름인 굿닥(goodoc)과 비슷한 900605라는 비밀번호를 보관함 앞에 적어놓고 간이 상비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죠. 트위터에도 비밀번호를 퍼뜨렸어요. 좋은 일을 하기 위해모든 사람에게 개방한 겁니다. 반년쯤 하다 운영비 문제로 접긴 했지만 여건이 되면 꼭 다시 하고 싶어요.”(김용훈 씨·30·굿닥 마케팅팀장)

“어머니가 김치를 갖다 주러 오신다고 비밀번호를 물어보셔서 알려 드렸어요. 아내가 신혼집은 우리의 영역이라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장모님이 오셔도 상관없다고 했더니 더 화를 냈어요. 아내는 장모님께도 비밀번호를 안 가르쳐 주거든요. 아내는 ‘비밀번호는 사생활에 대한 마지막 보루’라고 하죠. 휴대전화 비밀번호도 아니고 같이 쓰는 집까지 울타리를 치고 구분을 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박모 씨·39·A대 통계학과 교수)

 
오피니언팀 종합·안나 인턴기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졸업
#비밀번호#규칙#착한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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