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톡톡]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9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여름 휴가철입니다. 그렇지만 휴가를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올해 7월 전국 9500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의 57.7%가 올여름 휴가 계획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휴가를 반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고생길 생각하니

“여름에 휴가를 가 본 게 벌써 3, 4년 됐네요. 이젠 휴가도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하는 여자들은 다 그럴 거예요. 집안 살림하랴, 일하랴 바쁘죠. 휴가 땐 아예 집에서 쉬어요. 화분갈이와 대청소 등 밀린 집안일을 하죠.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거든요.”―김성란 씨(55·남대문시장 상인)

“아이가 고3이라 올여름 휴가를 안 가지만 딱히 아쉽진 않아요. 이제는 빡빡하게 여행 가는 것도 피곤해요. 전에는 휴가 때 캠핑도 하고 가족이 먹을 음식도 직접 준비하고 했는데, 휴가 준비도 피곤하더라고요. 이제는 저도 같이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휴가를 가더라도 비수기에 가지, 여름 성수기에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노미선 씨(47·주부)

“무더위엔 시원한 사무실에 있는 게 가장 좋은 휴가죠. 이제는 가족끼리 모여 딱히 어딜 가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야 아이들 때문에 간다고 쳐도,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저희와 안 가려고 하고요.”―홍문정 씨(60·부동산중개업자)

“원하는 날짜를 찾고, 어렵게 찾았는데 비싸면 지쳐 버려요. 성수기 숙박비는 비싸잖아요. 예약도 힘들고요. 생각처럼 편하게 여행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주저하죠. 술 한잔하고 밤늦게 영화 한 편 보는 게 최고죠.”―이시호 씨(55·자원봉사자)

“휴가를 자율적으로 쓰라고 하는데 제가 쉬면 업무에 차질이 생기거든요. 눈치 보이죠. 휴가 써도 딱히 할 게 없고요. 일주일 쉬어도 내내 집에서 잠만 자면 뭐 합니까? 구체적 계획도 없고, 일정도 애매하니까 굳이 휴가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노는 걸 또 다른 일처럼 할 필요는 없잖아요. 하루 연차를 써서 주말과 붙여서 쉬는 걸로도 충분해요.”―지수현 씨(26·무역회사 직원)
가족, 연인 일정 맞추자니

“최근엔 가족끼리 제대로 휴가를 못 갔네요. 아버지는 바쁘시고,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돌보셔야 해요. 할아버지 체력이 더 약해지기 전에 올해 여행을 다같이 떠나려 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부정맥으로 편찮으셔서 또 못 가게 됐어요. 저도 대학원을 준비하느라 여행 계획이 없습니다.”―문소진 씨(23·대학생)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올해부터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시작했어요. 매일 훈련을 하죠. 7월부터 11월까지 대회가 몰려 있어 코치님이 휴가를 안 주시더라고요. 8월에 해수욕장 근처에 콘도를 예약했는데 9월 경기가 있어서 안 된대요. 아들이라도 남편과 휴가 다녀오라고 하려고요. 아이가 운동선수인 집은 10년간
여행을 잘 못 간다고 하니 각오하고 있습니다.”―김주영 씨(39·사진 편집자)

“미혼이에요. 결혼한 동생은 가족들과 휴가 가는데 짝꿍 없이 거기에 끼고 싶지 않아요. 친구들도 다 결혼해서 가족이 우선이랍니다. 예전엔 친구들끼리 계를 부어 여행 가는 모임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행 대신 식사하는 모임으로 대체했어요.”―김미란 씨(33·학원 강사)
사는 곳도 휴가지다

“군인인 남편 따라 진주, 삼천포, 창원, 영천 등 남들이 휴가를 오는 곳에 살았어요. 그래서 휴가 개념이 별로 없었어요.
남들이 우리 집으로 휴가를 오는 편이었죠. 오히려 도시에서 영화, 전시회, 공연을 보러 가거나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일산 호수공원처럼 한적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송모 씨(47·주부)

“지난해와 올해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겼어요. 최상층의 바에서 식사하며 야경을 보고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거나 호텔과 이어진 쇼핑몰에 가죠. 도심에서 자유롭게 쉬는 기분이 색달랐어요. 가까운 외국에 있는 기분이랄까요. 아직 못 가 본 호텔도 많고 호텔마다 서비스도 달라서 매년 가고 싶어요.”―이승아 씨(28·회사원)

“여행은 짧게 다녀오고 남는 시간엔 찜질방에 많이 가요. 찜질방에는 떡볶이나 순대 등 먹거리도 다양하고 냉방도 되고요. 영화방도 있으니까 돈 주고 영화도 볼 수 있어요. 저렴한 가격에 하루 12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답니다.”―김득천 씨(60·건물 관리소장)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데 급급해요. 여행 갈 돈이 있으면 구두닦이 안 하죠. 요즘 구두 신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름엔 샌들을 신으니까 손님이 없어요. 하루에 1만5000원 벌까 말까 해요. 선풍기 하나로 이 컨테이너에서 버틸 수밖에 없습니다.”―김모 씨(80·구두 수선사)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상가가 8월 초에 일주일 쉬어요. 그때 전 무급휴가 시기인 셈이죠. 올해는 일이 너무 없어서 휴가 갈 수가 없습니다. 가족 3명이 휴가를 떠나도 50만 원은 들걸요.”―유동욱 씨(62·남대문시장 오토바이 퀵서비스 배달원)

“일할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26일이에요. 돈을 벌어야 하니 열심히 운행해야죠. 휴가는 가 본 지 오래됐어요. 그렇게 한 달 해 봐야 150만∼200만 원이죠. 회사에서 입금해 달라는 만큼만 벌어 일당 받아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요. ―이동민 씨(54·택시기사)

“정작 휴가는 못 가는데 휴가 가는 사람을 가장 많이 보는 게 우리예요. 여유가 있어야 휴가를 가죠. 관광버스 운전해서 다니는 게 우리한텐 휴가 겸 일이죠.”―정영식 씨(54·관광버스 기사)
너무나 바쁜 여름

“젖소 젖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짜야 해서 휴가는 언감생심입니다. 젖을 안 짜면 젖소가 탈이 나서 최소 열흘을 앓죠. 인부를 불러 일을 맡기면 하루 인건비 20만∼40만 원은 각오해야겠죠.”―손석헌 씨(52·라온목장 사장)

“신생 기업 특성상 규모는 작은데 일은 많으니 자리를 비울 수 없죠. 휴가를 1박 2일로 짧게 다녀와도 노트북 지참은 필수입니다.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작업해야 하니까요.”―윤성귀 씨(29·스타트업 ‘모인’ 대표)

“방학에 취업 스터디와 아르바이트를 하니 정신이 없어요.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긴 했지만 전날까지도 마음이 불편해 스트레스만 받았죠. 공부하려고 책까지 챙겼지만 결국 짐만 됐고요.”―권민지 씨(24·대학생)

“유원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5월부터 11월이 대목이에요. 휴가는 꿈도 못 꾼답니다. 가더라도 겨울에 가지만, 풍경도 스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죠.”―박흥수 씨(46·남이섬 ‘사랑닭갈비’ 사장)

“게스트하우스 일은 반쯤 노는 일이라 적성에 맞아요. 휴가는 못 가도 손님들 모시고 야경투어나 낚시도 가고, 삼겹살 파티도 하며 같이 놉니다.”―김태호 씨(36·게스트하우스 사장)

“레저스포츠 하는 가장이 있는 가정은 여름철 대목에 휴가를 못 가요. 남들은 휴가길 길이 막힌다, 바가지요금이 심하다고 투덜대지만 전 그게 행복한 비명으로 들리네요.”―정찬마 씨(55·스페셜포스 패러글라이딩 팀장)

 
“매일 노량진 고시촌의 독서실에서 11시간씩 공부해요. 하루 정도야 놀 수 있겠지만 삼계탕 식당을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휴가를 갈 수 없습니다. 성수기라 손님이 몰리는데 일도 안 도와주면서 놀러 가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죠.”―이한별 씨(26·취업준비생)
 
오피니언팀 종합·조혜리 인턴기자 성균관대 의상학과 4학년
#여름#휴가#휴가 반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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